여행의 역설: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워지는 길
비행기 이륙을 알리는 엔진 소리가 귓가를 울릴 때, 몸에 밴 스트레스가 자리를 양보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옆자리에 앉은 노인이 내게 말을 건넸다. "여행은 도망이 아니라 마주함입니다."
세 달 전, 나는 번아웃 직전이었다. 끝없는 업무 메일과 상사의 다그침, 그리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이 나를 짓눌렀다. 의사는 "스트레스성 위장장애"라는 진단과 함께 약을 처방했지만, 나는 충동적으로 회사 사직서와 함께 편도 항공권을 예약했다.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기로 했다.
첫 목적지는 네팔이었다. 히말라야의 차가운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올 때마다 서울에서 쌓인 독소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곧 나는 깨달았다. 여권을 잃어버릴까 봐, 돈이 떨어질까 봐, 길을 잃을까 봐 느끼는 불안감이 직장 스트레스보다 때로는 더 강렬했다는 것을. 그럼에도 이 스트레스는 달랐다. 이것은 선택한 스트레스였다.
인도의 바라나시에서는 갠지스강에 떠다니는 시신을 보며 삶의 무상함을 느꼈다. 태국의 한 사원에서는 명상하는 승려들 사이에 앉아 내 호흡에만 집중하는 법을 배웠다. 베트남에서는 비 오는 하노이 거리를 걸으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익혔다. 각 나라에서 느꼈던 낯섦과 불편함은 오히려 내 마음을 단련시켰다.
여행 넷째 달, 나는 깨달았다. 내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한 여행이 사실은 또 다른 형태의 스트레스를 통해 나를 강하게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잠들기 전 호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일기를 쓰던 그 순간들이, 서울의 아파트에서 느꼈던 공허함보다 훨씬 충만했다.
귀국 비행기에서 만난 그 노인은 40년간 세계를 여행했다고 했다. "여행은 스트레스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만나는 과정입니다. 불안함, 두려움, 고통... 그 모든 감정을 낯선 땅에서 경험하며 자신을 알아가는 거죠."
서울로 돌아온 지금, 나는 똑같은 도시에 살지만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직장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는 여전하지만, 이제 나는 그것을 다루는 법을 안다. 매일 밤 명상을 하고, 주말마다 작은 여행을 떠난다. 스트레스가 나를 짓누를 때면, 히말라야의 차가운 공기를 기억한다.
여행은 내게 스트레스를 피하는 방법이 아니라, 스트레스와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쳐주었다. 때로는 자신을 가장 불편한 상황에 던져넣어야 가장 편안한 자신을 만날 수 있다는 역설을. 내 책상 위에는 다음 여행지로 향하는 항공권이 놓여있다. 이번에는 도망이 아닌, 마주하기 위한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