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스트레스: 잠깐의 도피
어둠이 내려앉은 방에서 블루라이트만이 내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팝콘 한 알을 입에 넣으며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봤다. 주인공이 죽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더 이상 영화에 울 눈물이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오늘도 영화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82일째다. 매일 밤 다른 영화, 다른 세계, 다른 인생을 경험하며 내 인생은 잠시 멈춘다. 영화 속 캐릭터들은 모두 문제를 해결하거나, 최소한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한다. 반면 현실의 나는 해결책 없는 문제 속에서 숨만 쉬고 있다.
"이선아, 프로젝트 마감 언제 될 것 같아요?" 팀장의 메시지가 휴대폰 화면에 떴다. 오후 11시 27분. 나는 메시지를 읽고도 답장하지 않았다. 대신 영화의 볼륨을 더 키웠다.
처음에는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하루의 긴장을 풀기 위해 가끔 영화를 봤다. 그러다 하루에 한 편이 되었고, 이제는 매일 밤 의식처럼 자리 잡았다. 영화는 내게 완벽한 도피처였다. 두 시간 동안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심리 상담사는 이것을 "현실 도피형 스트레스 대응"이라고 불렀다. 한 달 전 상담에서 그녀는 "영화는 타인의 스트레스를 대리 경험하는 안전한 방법이지만,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방법은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날 저녁 또 다른 영화를 골랐다.
오늘 본 영화는 한 작가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는 글을 쓰지 못하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결국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렸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자신의 두려움에 맞서 새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영화가 끝나고 나는 문득 깨달았다. 82일 동안 나는 다른 사람들의 문제 해결을 지켜보기만 했다. 내 문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 문제들은 영화 속 문제처럼 두 시간 만에 해결되지 않는다.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내일 오전까지 마무리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오랫동안 손대지 않았던 노트북을 켰다.
때로는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 숨을 쉬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면 언젠가는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오늘 밤, 처음으로 나는 영화 속 주인공이 아닌 내 삶의 주인공이 되기로 했다. 내일은 영화를 보지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