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의 32번 방: 한 밤의 고민
호텔 방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내가 여기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32번 방은 내가 예약한 방이 아니었다. 리셉션에서 실수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카드키가 문을 열었고, 이미 밤 11시가 넘은 시간, 다시 내려가기엔 너무 피곤했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공기 중에 은은한 라벤더 향이 감돌았다. 침대는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창문 너머로는 도시의 불빛이 별처럼 반짝였다. 가방을 내려놓고 욕실로 향했다. 대리석 세면대 위에 놓인 세면도구들이 깔끔하게 정렬되어 있었다. 그런데 세면대 거울에 붙은 노란 포스트잇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오늘 밤 결정해요. - S'
분명 전 투숙객의 메모일 것이다. 호텔 청소부가 놓친 것일 테지. 메모를 떼어 휴지통에 버리려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S'는 누구일까? 무엇을 결정해야 했던 걸까? 침대에 앉아 노란 메모지를 바라보며 나는 의미 없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데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시계는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32번 방이신가요?"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였다.
"네, 그런데요."
"결정하셨나요?"
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침을 삼키고 망설이다 대답했다. "무슨 결정 말씀이신지...?"
"아, 실례했네요. 잘못 걸었어요."
전화는 끊겼고,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방 안을 둘러보았다. 갑자기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졌다. 옷장을 열어보았지만 비어있었다. 침대 밑도 확인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평범한 호텔 방이었다.
자려고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내 머릿속은 온통 'S'와 그 '결정'에 대한 상상으로 가득 찼다. 혹시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선 연인들의 방이었을까? 아니면 비즈니스 파트너가 중요한 거래를 앞두고 숙고하던 곳일까? 또는 인생의 중대한 변화를 앞둔 누군가의 고민의 흔적일까?
새벽 3시, 나는 결국 일어나 창가에 섰다. 호텔 앞 거리에는 한 여자가 서 있었다. 검은 코트를 입은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내가 있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우리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이 되어 체크아웃을 하며 나는 리셉셔니스트에게 물었다. "혹시 어제 32번 방의 이전 투숙객에 대해 알 수 있을까요?"
그녀는 컴퓨터 화면을 확인한 후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만, 32번 방은 리모델링 중이어서 한 달째 비어있었어요. 손님께서 첫 투숙객이십니다."
그날 이후, 나는 종종 다른 호텔에 묵을 때마다 호텔 방 번호를 확인한다. 그리고 32번 방을 지날 때면, 문 안쪽에서 누군가의 고민이 계속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32번 방에서, 누군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