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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스트레스

화장품 스트레스: 거울 속의 진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본 것은 언제였을까. 하연은 거울 앞에 앉아 열한 번째 화장품 병을 열었다. 화장대 위에는 파운데이션, 컨실러, 하이라이터, 블러셔, 아이섀도우 팔레트 세 개, 마스카라, 아이라이너, 립스틱 다섯 개, 그리고 지금 손에 든 프라이머까지. 모두 다른 브랜드, 다른 색상, 다른 약속들이 담겨 있었다.

"완벽한 피부를 위한 단 한 방울." 광고는 언제나 그렇게 말했다. 하연은 그 말을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캐비닛에는 아직 개봉하지 않은 화장품들이 더 있었다. 모두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충동적으로 구매한 것들이었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자 눈 밑의 다크서클이 더 짙어 보였다. 요즘 들어 더 심해진 업무 스트레스는 피부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프라이머를 피부에 바르자 차갑고 끈적한 느낌이 손가락을 타고 전해졌다. 파운데이션을 한 겹, 두 겹, 세 겹. 그럼에도 자신이 원하는 얼굴은 나오지 않았다.

"다음번엔 더 좋은 걸 사야겠어." 항상 하는 생각이었다. 그녀의 월급에서 화장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늘어갔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화장품은 하연의 유일한 위안이자, 매일 아침 세상을 마주할 용기를 주는 방패였다.

그날도 회의실에서 상사의 눈길이 그녀의 얼굴에 머물렀다. "하연 씨, 요즘 안색이 안 좋네. 일이 많아?" 하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거짓말이었다. 화장품 뒤에 숨은 그녀의 스트레스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 혹은 보려 하지 않았다.

퇴근 후, 그녀는 또다시 화장품 매장 앞에 서 있었다. 가장 최근에 출시된 세럼이 진열대 위에서 반짝거렸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녀는 항상 그렇게 다짐했다. 카드를 내밀면서도 그녀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새 화장품 상자를 뜯으며, 하연은 문득 멈춰 섰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이미 지워진 화장 아래 피로와 스트레스로 얼룩진 얼굴이었다. 갑자기 그녀는 모든 화장품을 서랍 깊숙이 넣고 얼굴을 씻었다.

마지막 물기를 닦아내며 거울을 보니, 낯선 얼굴이 그녀를 바라봤다. 하연은 오랜만에 자신의 진짜 얼굴을 마주했다. 그것은 컨실러로 가리기에는 너무 진실한 모습이었다. 피부 결점이 모두 드러난 얼굴에서 그녀는 오히려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

그날 밤, 하연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장바구니에 담아뒀던 화장품 대신 요가 매트를 주문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깊은 숙면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 거울 속에 비친 그녀의 얼굴에는 어제와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화장품이 아닌, 작은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