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GG

MBTI고민

MBTI 고민: 네 글자 뒤에 가려진 나

알림이 울렸다. "당신의 MBTI 유형은 'INFJ'입니다." 화면을 응시하던 나는 잠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처음 테스트를 했을 때는 'ENFP'였는데, 석 달 전에는 'ISFP'라는 결과가 나왔다. 오늘은 또 다른 조합이다. 문득 거울을 보니 네 글자를 들고 서 있는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세상에서 가장 희귀한 유형이래." 친구 민지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1%밖에 없다니까. 너 특별한 거였어." 그녀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특별함이라는 감정이 이렇게 허무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창밖으로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빗소리처럼 규칙적이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리듬, 그것이 내 마음과 닮아 있었다.

회사에서는 팀 빌딩이라며 모두의 MBTI를 공유하자고 했다. "INFJ라고요? 와, 정말 남을 잘 이해하시겠어요." 동료들의 반응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때부터 시작됐다. 내가 결정을 미루면 "역시 P 성향이네요"라고 했고, 내가 계획을 세우면 "오늘은 J 모드시네요"라고 웃었다. 마치 내 행동 하나하나가 네 글자의 틀 안에서만 해석되는 것 같았다.

카페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생각했다. 쓴맛이 혀끝에 남았다. 나는 어째서 이 네 글자에 나를 끼워 맞추려 하는 걸까?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내 정체성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당신은 무슨 유형인가요?"가 첫 질문이 되었다. 마치 고대 사람들이 별자리로 운명을 점쳤던 것처럼, 우리는 MBTI로 서로를 재단하고 있었다.

어제는 소개팅에서 그가 물었다. "MBTI가 뭐예요?" 나는 망설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모른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르고, 내일의 나는 또 달라질 테니까. "저는..."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저는 XXXX예요. 매일 바뀌는 사람이라서요." 그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거 새로운 유형인가요? 처음 들어봐요."

그날 밤, 스마트폰을 끄고 오래된 일기장을 꺼냈다. 첫 페이지에는 내가 열여섯 살 때 썼던 문장이 적혀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그 질문 앞에서 MBTI의 네 글자는 너무나 단순해 보였다. 사람은 16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매일 변하고, 성장하고, 때로는 후퇴하기도 한다.

창밖의 비가 그쳤다. 빗물이 흘러내린 창문을 통해 달빛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어쩌면 우리의 고민은 네 글자로 정의되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기장을 덮으며 생각했다. 나는 INFJ도, ENFP도, ISFP도 아니다. 나는 그저 '나'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