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과의 재회: 10년의 시간 너머
불현듯 내 앞에 서 있는 그를 보는 순간, 어제 헤어졌던 것처럼 모든 감각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커피숍 유리창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 그의 목소리에 섞인 익숙한 떨림, 그리고 10년 전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이 카페의 낡은 나무 의자 삐걱거리는 소리까지.
"민지야, 오랜만이다."
그의 목소리는 더 낮아졌지만, 내 이름을 부르는 방식은 그대로였다. 10년 전 헤어질 때 그는 "다시 만나자"라는 말 대신 "행복하길 바란다"라고 말했었다. 그래서 이 재회가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재석아, 어... 그러게." 내 목소리는 떨렸다. 손에 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흔들렸고,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가 우리 사이의 어색함을 더 크게 울렸다.
그는 이제 건축가가 되어있었다. 대학 때 그림자처럼 항상 들고 다니던 스케치북은 이제 정교한 건물 설계도로 바뀌어 있었다. 내가 아직도 영어 교사라는 걸 알고 그는 살짝 웃었다. "네가 하고 싶던 일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창밖으로는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계절과 같은 봄. 이런 우연이 가끔은 운명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 왜 갑자기 떠난 거야?" 10년간 가슴에 담아두었던 질문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말하지 않았던 게 있어." 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때 암 진단을 받았었어. 재발 가능성이 높아서... 네게 짐이 되기 싫었어."
시간이 멈춘 듯했다. 내 첫사랑, 내 남친이었던 사람이 죽음과 싸우고 있었다니. 그 고통을 혼자 견뎌냈다니.
"지금은?" 내 질문은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완치 판정 받은 지 1년 됐어. 그래서... 용기를 내서 널 찾았어."
테이블 위에 놓인 그의 손이 내 손을 향해 조금씩 다가왔다. 손가락 끝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멈췄다.
"10년 동안, 너에 대한 기억만이 나를 살게 했어. 다시는 이런 말 못할 줄 알았는데..."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따스함이 내 손을 타고 심장으로 전해졌다. 우리의 재회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점이었다.
창밖의 비가 그치고 햇살이 들어왔다. 마치 우리의 과거와 현재 사이에 놓인 어둠이 걷히는 것처럼. 우리는 10년의 공백을 뛰어넘어, 다시 한번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시간을 잊었다. 때로는 가장 깊은 이별이 가장 아름다운 재회의 문을 여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