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과의 재회: 십 년의 기다림
그는 내가 꼭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만 변해 있었다. 십 년이란 세월이 그의 관자놀이에 서리처럼 내려앉았지만, 나를 바라보는 눈빛만은 여전했다. 대표님이라 불렀던 그 사람, 김태준. 내 첫 직장의 CEO이자 내 마지막 실패의 증인.
"서연 씨, 오랜만이네요." 그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더 깊어져 있었다. 강남의 한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와 나 사이에 놓인 테이블이 어쩐지 십 년의 시간보다 더 넓게 느껴졌다. 커피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과거의 안개처럼 우리 사이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네, 대표님." 입술 끝이 떨렸다. 대표님이란 호칭이 십 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지금은... 이제 대표님이라고 부르면 안 되겠네요."
그가 미소 지었다. "괜찮아요. 여전히 대표 일은 하고 있으니까."
에스프레소 향이 내 기억을 자극했다. 벤처 회사의 작은 사무실, 밤샘 작업으로 구겨진 도면들, 실패한 프로젝트 발표 후 대표님이 내게 건넸던 마지막 커피 한 잔. 그리고 그날 밤, 내가 모든 것을 망쳐버린 그 순간.
"당신이 개발한 알고리즘이 결국 표준이 되었더군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내가 봤죠, 서연 씨의 논문을. 당신이 그때 우리 회사에서 제안했던 바로 그 방식이..."
갑자기 목이 메었다. "제가 떠난 후에... 다시 작업하셨던 건가요?"
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당신이 남긴 코드를 끝까지 믿었어요. 다만 시간이 좀 더 필요했을 뿐이죠."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내가 개발한 알고리즘이 투자 발표회에서 치명적인 오류를 일으켰고, 회사는 큰 투자자를 놓쳤다. 자책감에 사표를 던졌던 나. 하지만 대표님은 내가 남긴 코드를 완성시켰고, 그것이 지금 업계 표준이 되어 있었다.
"이번 주에 새 프로젝트를 시작해요." 그가 명함을 내밀었다. "당신의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팀에 합류하겠어요?"
창밖으로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십 년 전 내가 사표를 던지고 회사를 나섰던 날도 이런 봄비가 내렸었다. 하지만 오늘의 비는 무언가를 씻어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명함을 받아들었다. 손가락이 살짝 닿았을 때, 깨달았다 - 때로는 가장 아픈 실패가 가장 필요한 재회로 이어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