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의 그림자: 아이돌의 비밀
고층 빌딩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은 마치 다른 사람처럼 낯설었다. 모자와 마스크, 선글라스로 무장한 채 백화점 입구에서 초조하게 시계를 확인하는 나는 분명 수상해 보였을 것이다.
"지민 씨, 많이 기다리셨어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움찔했다. 뒤돌아보니 그녀도 나와 비슷한 복장으로 위장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걸그룹 '스타더스트'의 센터 유진. 오늘은 그녀와의 데이트였다.
"팬들은 아직 모르겠죠? 우리가 만난다는 거." 커피숍 구석자리에 앉으며 그녀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녀의 팬클럽 회장이었고, 공식적으로는 팬미팅 이벤트에서 데이트 기회를 얻은 '행운의 팬'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관계는 6개월 전부터 시작되었다.
영화관 안, 어둠 속에서 그녀의 손이 내 손을 찾았다. 스크린에는 로맨틱 코미디가 상영 중이었지만, L석 맨 끝자리에 앉은 우리는 영화보다 서로의 존재에 더 집중했다. 유진의 향수 냄새는 달콤했고, 숨죽여 웃을 때면 그녀의 어깨가 내 어깨에 살짝 부딪혔다.
"이거, 마지막 데이트가 될 수도 있어요." 영화가 끝나고 한적한 공원을 걸으며 그녀가 갑자기 말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회사에서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저희 그룹 컴백을 앞두고 있는데, 스캔들이 터지면..."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벤치에 앉아 그녀는 자신의 휴대폰을 펼쳤다. 소속사 대표와의 카톡이 보였다. '유진, 최근 행적 보고서 받았다. 내일 아침 회의실로 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물러나면 돼." 내가 말했다. "팬클럽 회장직에서 사퇴하고, 당분간 연락 끊고..."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지민 씨가 나타났던 모든 팬싸인회, 모든 공연 영상을 분석했대요. 우리가 눈빛으로 대화한다는 걸 팬들이 이미 유튜브에서 영상으로 만들어 올렸어요. '유진×팬클럽회장 눈빛 모음.zip' 같은 제목으로요."
가을바람이 차갑게 불었다. 유진은 갑자기 가방에서 작은 종이 봉투를 꺼냈다. "이거, 열어봐요."
봉투 안에는 두 장의 비행기 티켓이 있었다. 오사카행. 다음 주 금요일 출발.
"미쳤어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어쩌면요." 그녀가 희미하게 웃었다. "5년 계약이 끝나요. 다음 주면. 재계약 논의 중이지만... 저는 결정했어요."
나는 티켓을 내려다보며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유진이 속삭였다. "비밀이지만, 다른 멤버들도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어요. '스타더스트'는... 이번 활동을 마지막으로 해체돼요."
가로등 불빛 아래,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했다. 아이돌이라는 화려한 외피를 벗고, 그저 한 사람의 여자로 서 있는 그녀가 이상하게도 더 빛나 보였다. 유진은 내 귀에 속삭였다. "다음 데이트는 마스크를 벗고 해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