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같은 연애, 연애 같은 드라마
"모든 연애는 방송 전에 각본이 완성되어 있다."
이것은 나, 임지수 PD가 10년간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만들며 확신하게 된 진리였다. 내가 만드는 '진짜 사랑찾기'는 시청률 25%의 국민 드라마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만 진짜 사랑을 찾지 못했다.
그날도 나는 모니터 앞에서 출연자들의 '자연스러운' 데이트를 지시하고 있었다. 여섯 쌍의 커플이 제주도 바닷가 펜션에서 일주일간 지내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특집이었다.
"민준 씨, 수영 씨의 어깨에 살짝 손을 얹으세요. 더 자연스럽게요. 그리고 수영 씨, 놀란 듯 쳐다보다가 미소 지어주세요."
내 지시에 그들은 기계처럼 움직였다. 카메라 너머로 볼 때 완벽한 로맨스가 펼쳐졌다. 모래사장 위로 쏟아지는 석양이 물들인 두 사람의 실루엣, 바람에 나부끼는 수영의 머리카락, 그리고 민준의 다정한 손길까지. 시청자들은 이 장면에 환호할 것이다.
"커트! 완벽해요. 이제 인터뷰 촬영하러 갑시다."
인터뷰실에서 수영은 눈물을 글썽이며 민준에 대한 마음을 고백했다. 그녀의 감정이 진짜인지 연기인지는 나도 구분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녀 자신도 모를지 모른다. 이것이 내가 만든 드라마의 매력이었다. 현실과 연출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것.
촬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던 길, 주차장에서 수영과 마주쳤다. 그녀는 촬영 때와는 완전히 다른 표정이었다.
"PD님, 제가 좀 상담드려도 될까요?"
한적한 카페에서 그녀는 고백했다. "사실... 저 민준 씨 말고 다른 출연자를 좋아해요. 근데 각본대로라면 저희는 최종 커플이 되어야 하잖아요."
나는 커피잔을 돌리며 말했다. "우리 프로그램 제목이 '진짜 사랑찾기'인데, 진짜가 아닌 사랑을 보여줘야 할까요?"
수영의 눈이 커졌다. "그럼... 각본을 바꾸실 건가요?"
"10년 만에 처음으로요."
다음 날 촬영장은 혼란스러웠다. 수영이 갑자기 민준이 아닌 태현에게 마음을 고백한 것이다. 제작진은 당황했지만, 나는 모든 카메라를 돌리라고 지시했다. 시청자들은 이 예상치 못한 전개에 열광했다. 우리 프로그램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제작발표회에서 한 기자가 물었다. "이번 시즌은 정말 각본 없이 진행된 건가요?"
나는 미소지었다. "일부는 각본이 있었고, 일부는 없었죠. 하지만 어느 부분이 각본이고 어느 부분이 현실인지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게 바로 연애의 묘미니까요."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수영이었다.
"PD님, 제가 태현 씨랑 정말로 사귀기로 했어요!"
"축하해요. 진짜 사랑을 찾은 거네요."
"네, 그런데... 이상하게도 프로그램에서 만난 사랑이 이렇게 진짜일 줄은 몰랐어요. 가끔은 우리가 아직도 카메라 앞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게 다 꿈인 것만 같아요."
전화를 끊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밤하늘은 별이 보이지 않았다.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만든 드라마 속 연애와 현실의 연애는 과연 얼마나 다른 걸까? 어쩌면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드라마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각자의 마음속에 숨겨둔 각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