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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연애

소멸의 연애: 이별이 남긴 흔적들

그의 마지막 메시지는 '안녕'이었다. 단 두 글자로 우리의 2년이 끝났다. 화면에 떠 있는 그 글자를 보며 나는 우리의 관계가 얼마나 디지털화되었는지 실감했다. 디지털 기기 너머로 시작해 디지털 기기 너머로 끝난 연애.

이별 후 첫 주말, 나는 그와의 추억이 담긴 장소들을 하나씩 방문했다. 처음 만났던 카페에 앉아 당시 마셨던 것과 같은 카라멜 마키아토를 주문했다. 달콤함 뒤에 숨은 쓴맛이 혀끝에 남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가로수길은 우리가 처음 손을 잡았던 그 길이었다. 지금은 낙엽이 쌓여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소리가 마치 내 마음 한구석에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연애는 시간의 공동 투자였다. 우리는 미래라는 불확실한 주식에 현재라는 확실한 시간을 투자했다. 그는 떠났고, 내 투자금은 증발했다. 남은 것은 기억이라는 배당금뿐. 하지만 그 기억들은 점점 인플레이션이 되어 가치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와 함께 갔던 영화관에서는 새 연인들이 팝콘을 나눠 먹고 있었다. 우리가 즐겨 찾던 한강 공원 벤치에는 다른 커플이 앉아 있었다. 세상은 멈추지 않았고, 내 자리는 너무도 쉽게 채워졌다. 이별의 가장 잔인한 점은 세상이 너무 빨리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연히 그와 비슷한 실루엣을 보았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그가 아니었다. 이제 매일 그를 찾는 망망대해 같은 도시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압도했다. 우리가 함께했던 공간들은 이제 지뢰밭이 되었다. 어떤 골목, 어떤 가게, 어떤 노래가 어느 순간 폭발할지 모른다.

집에 도착해 그동안 모아둔 모든 연애의 흔적들을 상자에 넣었다. 함께 찍은 사진들, 영화 티켓, 그가 준 작은 선물들, 메모들. 상자를 닫으려는 순간, 마지막으로 봤던 카톡 메시지가 떠올랐다. '안녕.' 그 단어가 가진 이중성이 가슴을 찔렀다. 시작을 알리는 인사이자 끝을 알리는 인사. 우리는 안녕으로 시작해서 안녕으로 끝났다.

이별 후 한 달이 지났다. 휴대폰을 보는 횟수가 줄었고, 그의 SNS를 확인하지 않는 날도 생겼다. 이별의 고통은 그렇게 서서히 희미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흥미롭게도, 이별은 연애의 끝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연애였다. 그와의 관계가 끝났음에도, 나는 여전히 그와의 관계에 묶여 있었다. 그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그를 계속 생각하게 만들었으니까.

오늘, 나는 그 상자를 다시 열어보았다. 놀랍게도 그 안의 물건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다른 사람의 추억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상자를 다시 닫았다. 이별이라는 과정을 거쳐 연애라는 경험이 내 일부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상처는 아물어도 흉터는 남는 법이다. 그래도 괜찮다. 흉터는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