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GG

병원연애

병원 연애: 심장이 두 번 뛰는 곳

심장 모니터의 일정한 비프음이 규칙적으로 울리는 순간, 나는 그녀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중환자실의 형광등 불빛 아래, 환자가 아닌 동료 의사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김선생, 그렇게 쳐다보면 정말 내가 죽어가는 것 같잖아." 윤지원 선생의 목소리는 약했지만, 그 특유의 유머는 여전했다. 과로로 쓰러진 그녀가 자신의 근무하던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러니.

복도를 걸을 때마다 그녀의 향수 냄새를 따라가던 나였다. 메스를 들 때 떨리지 않는 그 손이, 커피를 건네며 살짝 떨리던 순간들. 병원의 하얀 벽들은 우리의 시선이 만나는 순간을 모두 목격했다.

"알잖아요, 중환자실에선 고백하면 안 된다는 거." 그녀가 희미하게 웃었다. 응급 코드가 울릴 때마다 달려가던 우리는, 감정에 관해서만큼은 놀랍도록 느렸다.

병원은 이상한 곳이다. 매일 생과 사를 목격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감정은 마취시키는 곳. 소독약 냄새와 커피 향이 뒤섞인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를 향한 진단을 내리지 못했다.

"기억나? 처음 만났을 때, 네가 수술실에서 환자 살리고 눈물 훔치던 거." 그녀의 말에 나는 놀랐다. 아무도 보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을. "그때 알았어. 네가 평생 숨기고 싶어하는 것이 널 가장 특별하게 만든다는 걸."

병원 구석구석에 우리의 비밀스러운 순간들이 스며들어 있었다. 차트를 확인하며 나눈 시선들, 수술 후 지친 서로의 등을 토닥이던 손길, 당직실에서 나눈 소소한 대화들. 우리는 생명을 구하는 일상 속에서 서로를 조금씩 구해가고 있었다.

그녀가 퇴원하던 날, 병원 옥상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손을 잡았다. 도시의 불빛이 마치 심전도처럼 일렁였다. "우리가 여기서 만난 건 우연이 아닐지도 몰라," 그녀가 말했다. "매일 다른 사람들의 심장 소리를 듣다가, 결국 네 심장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될 줄은 몰랐어."

의사 가운 주머니에 항상 넣어두던 초콜릿 한 조각을 그녀에게 건넸다. 수술이 길어질 때마다 당 떨어짐을 막기 위해 챙겨두던 것. 그녀는 웃으며 받았다. "역시 심장 전문의잖아. 당신은 내 심장을 어떻게 다루는지 정확히 알고 있네."

병원이라는 미로 같은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를 향한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때로는 응급상황처럼 급박하게, 때로는 오랜 회복 과정처럼 천천히. 흰 가운 사이로 흘러들던 그 연애는, 어쩌면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생명만큼이나 경이로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