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GG

아이돌짝사랑

아이돌의 짝사랑: 빛나는 무대 위 가려진 마음

무대 조명이 내 얼굴을 비추는 순간,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 쏟아지는 함성 속에서 나는 완벽한 웃음을 지으며 춤을 춘다. 하지만 객석 맨 뒤 13번째 줄,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그 사람만은 속일 수 없다.

"혜주야, 오늘도 에너지 넘치는 무대였어!" 매니저의 칭찬이 귓가를 스친다. 나는 고개만 끄덕이며 분장실로 향한다. 거울 앞에 앉아 반짝이는 메이크업을 지우는 내 손길이 잠시 멈춘다. 팬 사인회 때 건네받은 편지들이 테이블 위에 쌓여있다. 하지만 내가 기다리는 건 그중에 없다.

데뷔 3주년, 첫 솔로 콘서트, 5번의 음악 방송 1위. 모든 게 꿈같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객석의 한 지점만 바라보게 된 것은. 13번째 줄,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카메라 대신 그림을 그리던 그 사람. 다른 팬들과 달리 결코 소리치거나 환호하지 않았지만, 모든 공연에 빠지지 않고 찾아왔다.

"선우씨, 이번에도 왔네요." 어느 날 용기를 내 말을 걸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안다는 사실에 그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매번 그림 그리시더라고요. 한번 볼 수 있을까요?" 그가 건넨 스케치북에는 무대 위 내 모습이 빛나고 있었다. 단순한 팬아트가 아니었다. 그는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담아냈다. 화려한 의상과 메이크업 너머의 진짜 나를.

그날 이후 우리는 가끔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철저한 비밀로. 그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였고, 내 첫 팬미팅에서 우연히 날 본 후 팬이 되었다고 했다. 매니지먼트가 알면 큰일 날 테지만, 선우와의 시간은 내게 유일한 휴식 같았다. 아이돌 혜주가 아닌, 그냥 스물셋 여자아이 이혜주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

"다음 주에 뉴욕으로 떠나요." 그가 말했다. "좋은 기회가 생겼어요." 축하한다고 말했지만 내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내가 그에게 느낀 감정이 단순한 친밀감이 아니라는 것을.

마지막 콘서트 날, 나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날따라 13번째 줄은 비어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분장실로 돌아오니 테이블 위에 낯익은 스케치북이 놓여 있었다. 펼쳐보니 무대 위에서 빛나는 내 모습과 함께 작은 글씨로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가 짝사랑했던 건 진짜 그가 아니라, 그가 보여준 나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조명 아래가 아닌 곳에서도 빛날 수 있다고 믿게 해준 그 시선을. 스케치북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자 그림 한 장이 더 있었다. 무대 아래 객석에서 그를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었다. 이제야 깨달았다. 우리는 서로 다른 위치에서, 결코 닿을 수 없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