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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출근

아이돌의 출근: 스포트라이트 뒤의 그림자

새벽 4시 37분,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오늘은 몇 번째 잠들지 못한 밤인지 세는 것조차 포기했다. 거울 속 내 얼굴은 인스타그램에 올라가는 필터 없는 사진처럼 낯설었다.

화장대 위 조명이 내 얼굴을 비추자 어제 몰래 흘린 눈물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매니저 오빠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기 전에 얼른 지워야 했다. 티가 나면 안 되니까. 아이돌은 항상 완벽해야 하니까.

"준영아, 일어났어? 오늘 스케줄 빡빡해."

나는 가장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오빠! 준비 다 됐어요."

거울 앞에서 연습한 미소를 지었다. 팬들은 이 미소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겠지. 연습실에서 흘린 땀방울만큼이나 많이 연습한 미소였으니까.

차 안은 고요했다. 창밖으로 흐르는 서울의 새벽 풍경이 마치 흑백 영화처럼 느껴졌다. 출근길에 선명한 색깔은 편의점 간판뿐이었다. 매니저 오빠가 건넨 단백질 쉐이크를 마시며 오늘의 스케줄을 다시 확인했다. 라디오, 광고 촬영, 팬미팅, 앨범 녹음, 안무 연습. 숨쉬는 시간조차 계약서에 적혀있는 것 같았다.

차가 방송국 지하 주차장에 들어서자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랬다. 출근하는 순간부터 나는 '아이돌 준영'이 되어야 했다. 누군가의 꿈, 누군가의 위로, 누군가의 희망.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순간이었다.

"준비됐어?" 매니저 오빠가 물었다.

"네, 당연하죠."

차 문이 열리는 순간, 기다리고 있던 팬들의 함성과 카메라 플래시가 나를 덮쳤다. 눈이 부셨다. 그럼에도 가장 빛나는 미소를 지어야 했다. 이것이 내 직업이니까. 이것이 내 출근이니까.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자 손을 흔들었다. 그때 작은 쪽지를 건네받았다. 경호원의 눈을 피해 재빨리 주머니에 넣었다. 방송국 화장실 칸에 앉아 그 쪽지를 펼쳤다.

"오빠가 힘들어할 때마다 내가 힘이 됐어요. 이번엔 제가 오빠의 힘이 되고 싶어요. 쉬어도 괜찮아요."

눈물이 흘렀다. 이런 순간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화장을 고치며 마음을 다잡았다. 오늘도 완벽한 '아이돌 준영'으로 무대에 서야 했다.

스태프들 사이를 지나 스튜디오로 들어가는 길,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이 '출근'이 끝나고 돌아갈 '퇴근'은 없다는 것을. 무대 위의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에 그어진 경계선이 언제부턴가 흐려져 버렸다는 것을.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것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