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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호텔

아이돌의 호텔: 유리 너머의 세계

소리 없이 열린 호텔 1801호 문 앞에 카메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웃었다. 아이돌 데뷔 5년 차, 이제는 본능적으로 나오는 웃음이었다. 촬영 중이 아닐 때도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 것이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이겠지.

"오늘은 자연스러운 모습 보여주세요. 그냥 평소처럼 지내는 모습만요." 카메라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처럼. 무대 위가 아닌 곳에서 '평소처럼'이라는 말의 의미를 까마득히 잊은 지 오래였다.

호텔 방은 언제나처럼 완벽했다. 주름 하나 없는 침대 시트, 반들반들한 대리석 욕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도시의 파노라마. 럭셔리 호텔들은 전 세계 어디서나 똑같았다. 도쿄든 런던이든 서울이든, 나는 언제나 같은 공간에 있는 것 같았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는, 떠도는 존재.

침대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카메라는 내 뒷모습을 담겠지. '아련한 슈퍼스타의 고독한 순간'이라는 자막과 함께. 현실은 단지 피곤한 서른 살의 여자가 다음 일정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뿐이었지만.

호텔 객실은 내게 제2의 집이었다. 아니, 어쩌면 진짜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 투어, 해외 팬미팅, 화보 촬영으로 일 년의 절반 이상을 호텔방에서 보냈다. 그래서일까, 때로는 호텔이 내 인생의 은유처럼 느껴졌다. 완벽하게 정돈되었지만 누군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공허함. 화려하지만 어딘가 허전한 공간. 누구나 들어올 수 있지만 아무도 진짜로 머물지 않는 곳.

"물 한 잔 마셔도 될까요?" 카메라맨을 향해 미소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호텔 책상 위에 놓인 생수병을 집어 들었다. 병을 돌리다 라벨에 적힌 작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당신의 목마름을 채워드립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내 인생도 이 생수병과 다를 바 없었다. 나는 누군가의 갈증을 채우는 존재였다. 무대 위에서, 화면 속에서, 팬들의 환호 속에서.

카메라를 향해 물병을 들어 보였다. 완벽한 각도, 브랜드 로고가 정확히 보이도록. 광고 촬영 때 익힌 습관이었다. 자연스러움을 가장한 완벽한 부자연스러움.

창밖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반사된 이미지는 낯설었다. 마치 다른 세계에 갇힌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정전이 되었고, 방 안은 순식간에 어둠에 잠겼다. 카메라맨은 당황했지만, 나는 이상하게 평온했다. 이 순간만큼은 카메라가 나를 담지 못했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진짜 나만의 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도시의 불빛들이 반짝였다.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창 너머의 세상만이 선명했다. 문득 깨달았다. 호텔과 아이돌은 닮아있었다. 모두가 동경하지만 누구도 진짜로 알지 못하는 세계. 유리 너머로만 바라볼 수 있는 환상.

불이 들어왔다. 카메라 렌즈 앞에서 나는 다시 미소 지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그 짧은 어둠의 순간, 나는 유리창 양쪽의 세계를 모두 보았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