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GG

여행재회

여행의 끝에서 만난 재회

기차역 플랫폼의 시계가 멈춘 건 여덟 시 십오 분이었다. 내 인생도 그 시간에 멈춘 듯했다. 열차는 지연됐고,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다. 비에 젖은 역사의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우산 없는 나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나는 십 년 동안 열여덟 개국을 여행했다. 밤하늘의 별을 이불 삼아 사하라 사막에서 잠들었고, 안데스 산맥의 정상에서 구름을 만졌다. 베네치아의 좁은 골목에서 길을 잃었고, 방콕의 시장에서 처음 보는 과일의 맛에 놀랐다. 여행은 내게 숨을 쉬는 것과 같았다. 그곳에서 잠시 멈추면 질식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전화 한 통으로 이 긴 여행은 막을 내렸다. "아버지가 위독하시다." 십 년 만에 돌아오는 귀국길. 나는 아직도 떠나고 싶었다. 기억이 묻힌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웠다.

"민지야?"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뒤돌아보니 우산을 든 사내가 서 있었다. 비에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얼굴을 알아보는 데 몇 초가 걸리지 않았다. 서준. 내가 떠나야만 했던 이유.

"우산 좀..." 그가 우산을 내 쪽으로 기울였다. 그의 어깨가 비에 젖었다.

"괜찮아. 난 비를 맞는 게 익숙해." 열대 우림의 스콜이 터졌을 때, 페루의 고산지대에서 안개비를 맞으며 걸었을 때, 나는 비에 젖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십 년이면 충분히 멀리 갔겠다 싶었는데." 그의 목소리에는 쓸쓸함이 묻어났다.

"충분히 멀리 갔을 때까지 도망치고 싶었어." 내 목소리는 떨렸다.

"도망이 아니야, 민지야. 네가 떠난 건 여행이었어. 넌 항상 떠나고 싶어 했잖아."

서준의 말은 반쯤 맞았다. 그와의 이별 후, 나는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은 도피였다가 어느새 여행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존재의 일부가 되었다.

"네 우산 아래 있어도 돼?" 내가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우산을 더 가까이 가져왔다. 우리 사이의 거리는 불과 몇 센티미터였지만, 십 년의 시간만큼 넓게 느껴졌다.

"아버지는 어떠세요?" 내가 물었다.

"아버지는 괜찮으실 거야. 어머니가 너를 보고 싶어 하셔서... 내가 거짓말을 했어."

순간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눈앞의 서준은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주름진 눈가와 살짝 휜 어깨는 그도 자신만의 여행을 해왔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네가 떠난 후, 난 매일 여기 기차역에 왔어. 네가 언젠가 돌아올 거라 믿었으니까."

역 안내 방송이 울렸다. 내 열차가 곧 도착한다고 했다. 십 년의 여행이 끝나고, 새로운 여정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혼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무언가를 찾아 헤매었다. 낯선 도시들과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말이다.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찾던 것은 어쩌면 여기, 집으로 가는 길 위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같이 갈까?" 서준이 손을 내밀었다. 가장 낯설고도 가장 익숙한 그 손을 잡으며, 나는 생각했다. 모든 여행의 끝에는 누군가와의 재회가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