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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썸타기

연애의 끝, 썸타기의 시작

"나는 연애를 끝냈다. 그리고 다시 썸타기를 시작했다."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이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새벽 세 시, 술에 취해 보낸 마지막 문자는 '더 이상 못 만나겠어'였다. 여섯 달의 관계가 여섯 글자로 정리되는 순간이었다.

도연이 커피를 내밀며 말했다. "썸이 제일 좋지. 설렘만 있고 책임은 없으니까." 쓴웃음이 났다. 그녀의 말은 언제나 현실적이었다. 에스프레소 향이 코끝을 스치며 나를 현실로 데려왔다. 창밖으로는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물방울들이 유리창을 타고 내려가는 모습이 마치 지워지지 않는 기억처럼 느껴졌다.

"어제 만난 사람, 어땠어?" 도연의 질문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제 소개팅에서 만난 그는 따뜻한 미소를 가진 사람이었다. 대화는 부드럽게 흘렀고, 손목시계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서 섬세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어떤 벽이 생겨 있었다.

"괜찮았어. 근데 더는 안 만날 거야." 도연의 눈이 커졌다. "왜? 나쁜 사람이었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좋은 사람 같았어. 그래서 더 못 만나겠어." 내 대답에 도연은 한숨을 쉬었다.

커피숍을 나와 우산 아래에서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연애의 끝에서 사람들은 왜 다시 썸타기를 선택할까. 그건 마치 불에 한 번 데인 후에도 다시 불 가까이 가는 것과 같았다. 뜨겁지만 완전히 타버리지 않는, 그런 거리를 유지하는 것. 몸은 데워지지만 마음은 안전한 거리에 두는 것.

핸드폰이 울렸다. 어제 만난 그였다. '오늘 저녁, 시간 괜찮으세요?' 메시지를 읽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건 설렘일까, 불안일까. 답장을 쓰려다 멈췄다.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일까. 진짜 연애? 아니면 그저 썸타기의 안전함?

비가 그치고 있었다. 우산을 접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 사이로 햇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도연의 말이 맞았다. 썸타기는 편했다. 상처받을 일도 없고, 실망할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깊이 행복해질 가능성도 없었다.

핸드폰을 다시 들어 메시지를 썼다. '저녁 7시, 어제 그 카페에서 만날까요?' 보내기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연애의 끝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은 썸타기가 아니라 용기였다. 그리고 때로는 그 경계를 넘나드는 것 자체가 삶의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비가 그친 거리에는 무지개가 걸렸다. 빛과 물이 만나 생기는 이 현상처럼, 어쩌면 연애와 썸타기 사이의 경계에서도 무언가 아름다운 것이 생겨날지 모른다는 희망이 내 안에서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