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그림자, 아내의 비밀
청첩장이 도착한 그날, 그녀의 사진을 보는 순간 내 세계가 무너졌다. 내가 5년 전 헤어진 연인 지수가 내 가장 친한 친구 민석의 아내가 될 예정이었다.
"축하한다, 축하해야 하는 거지." 입술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나는 거울 속 내 모습에게 중얼거렸다. 청첩장의 분홍빛 글씨가 눈앞에서 춤을 추었다. 손가락으로 그녀의 미소를 쓸어내리자 과거의 기억이 향수처럼 번져나갔다.
지수와의 연애는 대학 시절 가장 빛나는 추억이었다. 캠퍼스 벚꽃 아래서의 첫 키스, 좁은 원룸에서 나눈 속삭임, 미래를 그리던 밤들. 하지만 졸업 후 현실은 우리를 갈라놓았다. 나는 해외 취업을, 그녀는 국내 대학원을 선택했다. "언젠가 다시 만나자"라는 약속은 허공에 흩어졌다.
결혼식장. 꽃향기와 축하객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나는 축의금 봉투를 만지작거렸다. 민석은 신랑 대기실에서 나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었다.
"드디어 왔구나! 네가 해외에서 올 수 있을지 걱정했어."
"네 결혼식인데 안 올 수 있겠어?"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지수가 널 아는지 물었더니 모른대. 너희 같은 대학 아니었어?"
심장이 멎는 듯했다. "아, 그럴 수도 있지. 학과가 달랐으니까."
식이 시작됐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지수가 입장할 때, 그녀의 눈이 순간 나와 마주쳤다. 그 찰나의 시선 교환, 서로를 알아보면서도 모른 척하는 연기. 우리는 과거를 묻은 채 현재를 연기하고 있었다.
피로연에서 건배사를 하게 됐을 때, 나는 술기운에 취해 말했다. "사랑은... 때로는 포기해야 하는 거죠. 민석이는 제가 포기한 것을 얻은 행운아입니다."
사람들은 웃었지만, 지수의 눈에 스친 그림자를 나만 볼 수 있었다.
결혼식 후 화장실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아니, 어쩌면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오랜만이야," 지수가 말했다.
"그래, 축하해."
"고마워... 그날 네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
"나도 네가 정말 날 잊을 줄은 몰랐어."
지수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잊은 게 아니야. 그냥... 살아가는 거야."
그때 화장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우리는 서둘러 대화를 접었다. 민석의 어머니였다.
"아, 여기 계셨군요! 신부님, 사진 촬영할 시간이에요."
지수는 미소를 지으며 떠났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낯설게 느껴졌다.
귀국 비행기에서 민석에게서 문자가 왔다. "덕분에 좋은 결혼식이었어. 다음에 네 결혼식에도 내가 건배사 할게."
창밖의 구름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사랑했던 여자는 이제 친구의 아내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 세 사람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과거의 연애라는 유령과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