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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오컬트

연애 오컬트: 그림자와 사랑의 계약

혜진이 그를 처음 본 건 오래된 서점 구석, 누구도 찾지 않는 오컬트 섹션에서였다. 그는 책장 사이로 비치는 희미한 빛 아래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혜진은 이상하게도 그가 자신을 오래 기다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혼자서 이런 책을 읽는 여자는 처음 봅니다." 그의 목소리는 오래된 종이 냄새처럼 묵직했다. 손에 든 책은 '사랑의 주술'이라는 제목이었다.

"연애 운이 없어서요." 혜진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스물여덟, 한 번도 진지한 연애를 해본 적 없는 그녀였다.

그의 이름은 서준. 그날 이후 혜진의 세계는 완전히 달라졌다. 서준이 알려준 작은 의식들을 하나씩 따라하면서, 혜진의 주변에는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우연히 만나는 남자, 카페에서 시선을 교환하는 낯선 이, 회사에서 갑자기 관심을 보이는 동료까지.

"효과가 있어!" 혜진은 서준에게 기쁜 마음으로 전화했다. 서준의 웃음소리는 전화기 너머로도 섬뜩했지만, 혜진은 그저 그의 독특한 개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너무 순조로웠다. 혜진의 주변에 나타나는 남자들은 모두 완벽했다. 그녀가 상상했던 이상형을 그대로 본떠 만든 듯한 남자들.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어딘가 공허했고, 웃음소리는 메아리처럼 비어있었다.

의심이 들기 시작한 그날 밤, 혜진은 서준이 건네준 낡은 노트를 발견했다. 첫 페이지에는 '사랑의 그림자 계약서'라고 쓰여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페이지를 넘기자, 그곳에는 혜진이 한 번도 쓴 적 없는 자신의 서명이 선명했다.

"계약 내용은 간단해요."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서준의 목소리에 혜진은 얼어붙었다. "당신에게 사랑을 줄 테니, 그 대가로 당신의 진짜 사랑을 포기하는 거죠."

혜진이 돌아보자 서준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는 사람이 아니었다. 방 안의 그림자들이 모여 인간의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무... 무슨 말이에요?" 혜진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당신 주변의 남자들은 모두 내가 만든 환영이에요. 진짜 당신의 운명은..." 서준은 창밖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혜진의 오랜 친구 민수가 꽃다발을 들고 서 있었다. 언제나 곁에 있었지만 결코 보지 못했던 진짜 사랑.

"계약을 파기하고 싶다면, 단 하나의 방법이 있어요." 서준의 목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오컬트와 사랑 사이에서, 진실로 원하는 것을 선택하세요."

혜진은 창문을 통해 민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서준에게서 건네받은 붉은 양초를 들어올렸다. 이것이 계약을 파기하는 마지막 주술의 도구였다. 불꽃을 켜는 순간, 그녀는 알았다 - 진짜 마법은 오컬트 책이나 주문에 있지 않고, 용기 내어 내딛는 한 걸음에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