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MBTI: 우리가 심리학에 속았다
온통 알파벳 네 글자로 도배된 그의 소개팅 프로필을 보는 순간, 나는 무의식적으로 '아, 이 사람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INFJ, 희소가치 있는 인류의 1%", 그리고 그 밑에 덧붙여진 "ENFP나 ENTP와 찰떡궁합". 그 자신감 넘치는 문구 속에서 내 ISFP는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또 하나의 잠재적 연애가 시작도 전에 끝났다.
대화는 예상보다 훨씬 자연스러웠다. 책과 영화에 대한 취향이 비슷했고, 그가 좋아하는 재즈 카페는 내가 주말마다 찾는 곳이었다. 웃음이 헤벌쭉하고 이야기를 들을 때 살짝 고개를 기울이는 모습이 귀여웠다. 커피 향기가 공기를 채우고, 그의 목소리는 재즈 베이스처럼 낮고 편안했다. 테이블 아래서 무심코 부딪히는 무릎이 묘한 설렘을 주었다.
"당신 정말 ISFP 맞아요?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그의 질문에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사실은 테스트 결과가 매번 달라요. 기분에 따라서요. 그냥 프로필에 하나 써넣은 거예요."
"저도요!" 그가 환하게 웃었다. "솔직히 INFJ라는 게 멋있어 보여서 적었어요. 실제 테스트에선 항상 ESFP가 나오는데, 그건 너무 흔해서..."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서로의 거짓말에 공범이 된 것 같은 이상한 친밀감이 생겼다.
세 번째 데이트 날, 그는 진지한 얼굴로 꺼내놓았다. "사실 말이에요, MBTI 궁합표에서 ESFP와 ISFP는 '가능성 낮음'으로 분류돼요. 우리 이대로 계속해도 될까요?"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네 글자로 사람의 모든 것을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당신이 좋아하는 재즈도, 내가 좋아하는 그 작가도, 우리가 함께 본 영화에서 같은 장면에서 울었던 것도 전부 네 글자로 설명돼요?"
그날 밤, 우리는 서울의 작은 아파트 베란다에 앉아 별이 보이지 않는 하늘을 바라보며 MBTI 테스트를 함께 풀었다. 매 질문마다 우리는 서로에게 물었다. "너라면 어떻게 대답할 것 같아?" 놀랍게도, 우리는 상대방의 답을 꽤 정확히 맞혔다.
결국 그날의 테스트 결과는 그는 ENTJ, 나는 ENFP로 나왔다. 전혀 다른 글자들. 하지만 그때 우리는 깨달았다 - 연애는 알파벳 네 글자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별이 보이지 않는 하늘 아래서도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