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의 병원: 우리가 만나지 말았어야 할 곳
그녀를 다시 만난 건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찌르는 병원 복도였다. 15년 만의 재회가 왜 하필 이런 곳에서였는지, 운명이라는 건 때로는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그녀의 흰 가운을 바라보았다. 한때 내 전부였던 지수는 이제 이 병원의 중환자실 담당 의사가 되어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민석 씨."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내 아버지의 담당의사가 그녀라니.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모니터의 규칙적인 삐-소리만이 침묵을 깨고 있었다.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누워계셨다. 그리고 나는 매일 병원을 오가며 지수를 마주쳤다. 그녀의 전문적인 손길이 아버지의 머리맡을 떠나지 않을 때마다, 우리가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그 날의 기억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상태가 많이 호전되고 있어요." 지수가 차트를 넘기며 말했다. "다행이네요." 나는 대답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네가 있어 다행이다'라는 말이 맴돌았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는 이미 넘을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열흘째 되는 날, 지수는 커피 한 잔을 들고 병원 옥상으로 나를 불렀다. 도시의 불빛이 반짝이는 저녁 하늘 아래,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사실... 당신 아버님이 내게 부탁하셨어. 당신에게 전해달라고."
내 눈에서 의문이 가득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의식이 돌아오셨어?"
"아니... 그게 아니라, 15년 전. 우리가 헤어지기 직전에."
나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지수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당신 아버님이 찾아오셨어. 의대생이었던 나에게 당신을 포기해달라고."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당신이 나 때문에 꿈을 포기할까 봐... 아버님이 무릎까지 꿇으셨어."
15년의 시간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내가 연극배우의 꿈을 접고 아버지의 회사를 이어받은 것, 지수가 갑자기 연락을 끊은 것,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분노와 배신감, 그리고 이상하게도 안도감이 뒤섞였다.
"아버님이 깨어나시면... 용서해드렸으면 해." 지수의 말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다만 손을 뻗어 그녀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 병원 스피커에서 응급 호출 안내가 흘러나왔고, 지수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지는 기적처럼 의식을 되찾으셨다. 그분의 흐릿한 눈이 나를 알아보았을 때, 나는 15년간 묻어두었던 질문을 던졌다.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병실 창문으로 비치는 아침 햇살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때로는 재회가 필요한 것은 이별을 완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라는 것을.
병원 로비에서 퇴원 수속을 밟는 동안, 지수는 멀리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의 재회는 여기서 끝일까, 아니면 또 다른 시작일까.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과 이별이 모두 이 차가운 병원 안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