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소설의 재회
글이 시작되는 곳은 항상 그렇듯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오래된 서점의 구석이었다. 유리창을 통해 비춰드는 희미한 저녁 햇살 아래, 내 손가락이 먼지 쌓인 책장을 스치다 멈췄다. 그의 이름이 적힌 소설을 발견한 순간, 20년 동안 봉인했던 기억이 홍수처럼 밀려왔다.
"황현우 작가의 마지막 소설입니다. 절판된 지 오래되어 찾으시는 분이 거의 없죠."
서점 주인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지만, 나는 이미 첫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종이에서 풍기는 오래된 잉크 향과 미세한 곰팡이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손끝은 미세하게 떨렸다. 나의 20대 초반, 그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이 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이란 두려움과 기대감이 교차했다.
"이 소설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쓴 작품입니다."
나는 그 문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의 헤어짐은 그의 죽음만큼이나 갑작스러웠으니까. 그날 밤, 마지막 다툼 후 그는 "모든 것을 소설로 쓰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그의 어떤 소식도 듣지 않기로 결심했다.
소설은 놀랍도록 익숙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대학 도서관, 함께 걸었던 한강 공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투었던 그의 작은 원룸까지. 다만 이름과 몇몇 세부사항만 바뀌어 있었다. 주인공은 내가 아닌 누군가였지만, 그녀의 말투와 행동은 분명 나였다.
책의 중간쯤, 구겨진 종이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황현우의 삐뚤빼뚤한 필체로 쓰인 메모였다.
"이 소설이 출간되면, 내가 살아있든 죽었든, 언젠가 그녀가 읽게 될 것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끝내지 못한다면, 그녀가 끝을 써주길 바란다."
놀랍게도 소설의 마지막 장은 비어 있었다. 마치 작가가 의도적으로 결말을 열어둔 것처럼. 서점 주인은 책 상태가 온전하지 않다며 사과했지만, 나는 이것이 황현우의 의도임을 직감했다.
집으로 돌아와 밤새 책상에 앉아 마지막 장을 채워나갔다. 내가 상상했던 우리의 재회, 용서, 그리고 새로운 시작. 그가 살아있다면 어떤 결말을 원했을까 고민하며 글을 써내려갔다. 펜을 내려놓은 순간, 창문 너머로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다음 날, 그의 소설이 재출간된다는 뉴스가 떴다. 편집자의 인터뷰가 눈에 들어왔다. "작가의 유고 중 발견된 마지막 장을 포함한 완전판이 출간됩니다." 숨이 멎는 듯했다. 우리는 서로 알지 못한 채, 같은 이야기의 다른 끝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저녁, 출판사로부터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황현우 작가의 유고를 정리하던 중, 당신에게 전해달라는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이제 두 개의 결말 중 어떤 것이 진실이 될지는, 내가 그 편지를 열어볼 용기가 있는지에 달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