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의 재회: 여사친의 그림자
그녀를 다시 마주했을 때, 시간은 열다섯 해를 건너뛰어 과거로 돌아갔다. 커피숍 유리창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낯설면서도 지극히 익숙했다. 내 여사친 수진이. 고등학교 시절 '그냥 친구'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거울 수 있는지 처음 알게 해준 사람.
"오랜만이네." 그녀가 내민 손에는 여전히 그때의 체온이 담겨 있었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열기가 우리 사이의 얼어붙은 시간을 서서히 녹이는 듯했다. 창밖으로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유리창에 부딪히는 소리가 우리의 어색한 침묵을 채웠다.
"변한 게 없네. 너." 수진이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많은 것이 변했다고 고백하고 있었다. 그녀의 왼손 약지에 반짝이는 반지는 이미 다른 누군가의 삶에 그녀가 속해 있음을 선언하고 있었다.
"SNS 프로필 사진 보고 바로 알아봤어. 넌 항상 그 미소였으니까." 그녀가 말했다. 15년 전, 우리는 서로에게 '그냥 친구'라는 안전한 울타리를 쳐두었다. 여사친, 남사친이라는 단어가 우리의 관계를 정의했지만, 그 경계선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흔들렸다.
"그때... 네가 고백했더라면 어땠을까?" 커피를 마시며 그녀가 불쑥 질문했다. 내 심장이 멈췄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니. 내가 그녀를 좋아했던 것을, 그저 여사친이라는 안전지대에 숨어 비겁하게 감정을 감추었던 것을.
"아마... 지금처럼 재회의 기쁨을 느끼진 못했겠지." 나는 억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진실은 너무 날카로워 꺼내기 두려웠다.
수진은 잠시 창밖을 바라보더니 "난 기다렸어"라고 중얼거렸다. "대학 졸업할 때까지. 네가 먼저 말해주길." 그녀의 눈에 맺힌 눈물이 빗방울처럼 흘러내렸다.
그때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여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수진은 통화 버튼을 누르고 "응, 금방 갈게"라고 말했다. 짧은 통화였지만, 그 순간 우리 사이의 시간은 다시 현재로 되돌아왔다.
"가봐야 할 것 같아." 수진이 일어서며 말했다. 그녀는 가방을 챙기며 잠시 주저하더니 내 손을 꼭 잡았다. "이번에 우리 제대로 친구로 지내자. 진짜 친구로."
그녀가 떠난 후, 비는 더 세차게 내렸다. 나는 그녀가 앉았던 자리에 남겨진 립스틱 자국이 선명한 찻잔을 바라보았다. 여사친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우리는 결국 서로의 삶에서 과거의 흔적으로만 남게 되었다. 가끔은 말하지 않은 진실이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을, 재회가 항상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배우게 된 가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