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의 직장: 과거를 마주한 오후
출입증을 목에 걸자마자 알았다. 그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공기 중에 미세하게 퍼진 그의 존재감이 15년 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나를 압박했다. 새로운 회사의 첫날, 나는 로비의 대리석 바닥에 발을 딛는 순간 얼어붙었다.
"김지원 씨, 환영합니다. 오리엔테이션은 7층 회의실에서 시작됩니다." 안내데스크 직원의 목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발걸음은 납처럼 무거웠다. 숫자 '7'을 누르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회의실 문을 열자 그가 정확히 내 시선의 중심에 있었다. 윤석현. 15년 전 대학 졸업과 함께 아무런 설명 없이 내 인생에서 사라진 사람. 이제는 전략기획실장이라는 명패를 달고 있었다. 그의 눈이 내 얼굴을 스쳐 지나가더니 다시 돌아와 고정되었다. 순간적인 놀람, 그리고 이내 감춰진 동요가 그의 표정에 스쳐 지나갔다.
"새로 오신 분들, 환영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더 깊어져 있었다.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되었지만, 내 귀에는 그의 목소리만 울렸다. 그날 밤,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내일 다시 만나자"던 그의 약속은 15년간 지켜지지 않았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각자 배정된 자리로 향했다. 내 책상은 창가 쪽 마케팅팀 구석이었다. 전략기획실과는 두 개 층이 떨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온종일 그의 존재가 건물 전체에 스며든 것만 같았다.
일주일이 지났다. 내 업무 적응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지만, 그와는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의도적 회피였을까. 다음 주 월요일, 팀장이 전략회의가 있다며 나를 불렀다. "지원 씨가 제안한 캠페인 아이디어, 전략기획실에서 관심을 보이더라고."
회의실에 들어서자 그가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있었다. 정장 차림의 그는 15년 전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기타를 치던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다. 회의가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둘 나갈 때,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지원 씨, 잠깐 시간 있어?" 다른 이들이 모두 나가고 문이 닫히자, 사무적이던 그의 얼굴이 무너졌다. "설명할 기회를 달라고 할 자격이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끊었다. "난 이제 와서 과거 얘기를 하러 온 게 아니에요. 내 제안에 대한 피드백이 필요해서요." 내 목소리는 단단했다. 떨림 없이.
순간 그의 눈에 스친 상처를 보았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찰나, 내 휴대폰이 울렸다. 액정에는 '남편'이라는 글자가 반짝였다. 잠시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여보, 아이 유치원에서 전화 왔어. 열이 좀 있대." 석현의 눈이 내 손의 결혼반지로 향했다. 무언가 깊게 포기하는 표정이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회사를 나서며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인생은 매일 크고 작은 재회의 연속인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때로는, 오래전 길을 잃은 이정표를 다시 마주하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 도시의 저녁, 과거와 현재 사이 어딘가에 나는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