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의 카페: 커피 한 잔에 담긴 시간
카페 문이 열리는 순간, 15년의 시간이 증기처럼 사라졌다. 익숙한 실루엣이 문가에 서 있었다. 네가 맞았다. 너는 나를 바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나는 너를 첫눈에 알아봤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의도적인 이 재회. 그러나 스마트폰 화면 속 SNS 사진 한 장에서 네가 자주 가는 카페를 찾아내어 일주일째 매일 같은 시간에 앉아있던 내 모습을 너는 모를 것이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는 걸, 인생은 간혹 그런 식으로 진행되니까.
"혹시... 민지 아니야?"
네가 마침내 알아봤을 때, 나는 놀란 척 고개를 들었다. 에스프레소 향이 진하게 감도는,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이 카페에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은 네 얼굴 위에 황금빛 무늬를 그려냈다. 고등학교 시절 봄날의 교실에서 본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우와, 서준! 정말 너구나. 앉을래?"
넌 내 앞에 앉았다.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흰 머그잔 위로 피어오르는 김처럼 우리의 대화는 공중에 떠다녔다. 네가 커피를 마실 때마다 숟가락이 컵에 부딪치는 작은 소리, 테이블 위에 놓인 네 손가락들의 미세한 떨림, 귀 뒤로 넘기는 머리카락의 부드러운 움직임까지. 나는 모든 것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때 왜 갑자기 사라졌어?"
너의 질문은 카페의 웅성거림 사이로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네가 모르는 것은, 부모님의 이혼과 함께 밤새 짐을 싸서 타지로 떠나야 했던 내 사정이었다. 마지막 인사도 없이, 약속도 지키지 못한 채. 그때 네가 불렀던 전화번호는 이미 연결이 끊겨 있었을 테니.
"미안해, 말하기 복잡했어."
미안하다는 한마디로 15년의 공백이 메워질 리 없었다. 하지만 넌 고개를 끄덕였다. 카페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은 우리의 어색함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저기... 사실..." 내가 입을 열려는 순간, 네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응, 곧 갈게. 아이들 데리러 가야 해."
너의 결혼반지가 그제야 내 시야에 들어왔다. 통증이 가슴을 꿰뚫었지만, 나는 미소를 지었다. 네가 남겨둔 반쯤 마신 커피잔을 바라보며. 15년 전, 내가 고백하려던 그날 밤 네게 전화했던 그 숫자들이 적힌 쪽지를 아직도 지갑에 넣고 다니는 사실을 너는 영영 모를 것이다.
카페를 나서는 네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때로는 인생에서 가장 완벽한 재회도, 가장 완벽한 이별의 시작점일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