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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연애

회사 연애: 보이지 않는 선

상무의 카드키가 복사기 위에 놓여있는 것을 본 순간, 나는 운명이라고 믿었다. 무의식적으로 주머니에 넣은 그 카드키는 15층의 비밀 회의실로 통하는 열쇠였고, 이것이 우리 사랑의 시작이었다.

"여기 아무도 안 오니까." 승민 과장의 말은 확신에 차 있었다. 그의 손이 내 허리를 감싸는 순간, 사무실 형광등 아래 드러난 우리의 그림자가 하나로 겹쳐졌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불빛들이 우리만의 별자리를 만들어냈다. 회의실 테이블은 우리의 비밀스러운 섬이 되었고, 사내 메신저는 암호문을 주고받는 통로가 되었다.

회사 연애는 숨바꼭질 같았다. "내일 3시 회의자료 검토하겠습니다"는 "옥상에서 만나자"는 뜻이었고, 엘리베이터에서 어깨가 스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요동쳤다. 우리는 서로를 대놓고 모르는 척하는 배우가 되었다. 때론 전체 회의에서 시선이 마주칠 때면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 것만으로 하루가 환해졌다.

"저희 팀 실적이 하락한 이유는..." 승민의 프레젠테이션을 듣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어제 밤 그가 내 귓가에 속삭인 말들이 맴돌았다. 직원들 사이에서 그는 냉철한 분석가였지만, 나만 알고 있는 그의 다른 모습이 있었다. 비밀은 단맛과 쓴맛을 동시에 가졌다.

6개월이 지났을 때, 우리의 비밀은 사내 익명 게시판에 올라왔다. "기획팀 박 과장과 마케팅팀 승민 과장이 15층 회의실에서..." 화면을 보는 순간 혈액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모니터 속 글자들이 댓글과 함께 증식했다. 점심 식사를 하는 동안 모든 시선이 우리를 향해 있었다. 침묵 속에 칼과 포크가 부딪히는 소리만 크게 울렸다.

인사팀 면담은 예상대로였다. "회사 규정상 같은 부서가 아니라 큰 문제는 없지만..." 그들의 말은 속마음과 달랐다. 우리 중 한 명이 자리를 옮기거나 떠나야 한다는 뜻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졌다.

그날 밤, 우리는 회사 근처 카페에 앉아 있었다. "내가 사표를 내면 돼." 승민이 말했다. 그의 커피는 식어가고 있었다. "아니, 내가 갈게." 내 답변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경력도, 연봉도 그가 더 나았으니까. 이성적인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는 깊어졌다.

"내일 아침에 사표 내고 짐 정리할게." 말을 마치자 그가 내 손을 꽉 잡았다.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내 결심을 흔들었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이었다. 회사냐, 연애냐. 때로는 둘 다를 가질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사물함을 정리하던 중 승민에게서 문자가 왔다. "옥상으로 올라와." 15층을 지나 옥상문을 열자, 그가 두 개의 봉투를 들고 서 있었다. 하나는 내 것, 하나는 그의 것. 둘 다 사표였다. 서울의 아침 공기가 우리의 얼굴을 스쳤다. "함께 새로운 시작을 하자." 그의 제안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때로는 보이지 않는 선을 지키는 것보다, 그 선을 함께 건너는 용기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