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운동장: 16가지 색으로 달리는 사람들
문득 깨달았다. 달리기 트랙에서 사람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달린다는 것을. 회사 단체 운동회 첫날, 나는 트랙 주변에 놓인 의자에 앉아 동료들을 관찰했다. 그때 내 손에 들린 것은 MBTI 유형별 특징이 적힌 책자였다.
정재현, ESTJ. 그는 항상 시작 신호 몇 초 전부터 준비 자세를 취했다. 옆 사람에게 "팔꿈치는 90도로 고정하고, 호흡은 일정하게"라고 조언하며 매뉴얼대로 달렸다. 100미터를 정확히 100미터로 달리는 사람. 초침이 정확히 목표 시간에 도달하자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 옆의 서지혜는 INFP. 달리기 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트랙에서 벗어나 들판 쪽으로 달려갔다. 나중에 물었을 때 그녀는 "구름 모양이 예뻐서 더 가까이 보고 싶었어요"라고 답했다. 마라톤 중에도 그녀는 세 번이나 멈춰 서서 들꽃을 관찰했다.
김민수, ENTP. 규칙이라는 개념 자체를 무시했다. 달리기 전 트랙을 분석하더니 자신만의 최단 코스를 개발했다. "왜 굳이 원을 따라 달려야 해? 직선이 최단거리인데." 심판의 경고에도 그는 웃으며 자신만의 논리를 펼쳤다. 결국 실격됐지만, 새로운 경기 방식을 제안하는 보고서를 다음 날 제출했다.
박소연은 ISFJ였다. 자신의 기록보다 함께 뛰는 동료들을 더 신경 썼다. 누군가 넘어지면 가장 먼저 달려가 일으켜 세웠고, 자신의 물통을 나눠주기 위해 페이스를 늦추기도 했다. 결승선에서 그녀는 항상 마지막이었지만, 모두가 그녀에게 박수를 보냈다.
내 옆자리, INTJ인 이태민은 경기에 참여하지 않고 노트북으로 모든 선수의 움직임, 페이스, 호흡 패턴을 기록하고 있었다. "다음 대회에서 최적의 주행 전략을 개발 중입니다. 참여보다 관찰이 더 가치 있어요."
그때였다. 옆자리에서 누군가 내 책자를 슬쩍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도 MBTI 같은 거 믿어요?" 나는 대답 대신 그녀에게 트랙을 가리켰다. "사람들이 어떻게 달리는지 한번 보세요."
우리는 함께 운동장을 바라봤다. 한 트랙 위에 16가지 색깔의 러너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달리고 있었다. 어떤 이는 계획대로, 어떤 이는 즉흥적으로, 어떤 이는 경쟁하듯, 어떤 이는 협력하듯.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했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달리고 있는 트랙은 각기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다음 날, 내 차례가 왔다. 출발선에 서서 나는 생각했다. MBTI가 과학인지 미신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중요한 건 우리 모두 같은 트랙 위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달린다는 것. 그리고 그 다양성이 이 운동장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을. 신호총이 울렸고, 나는 내 방식대로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