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식과 대표님: 버튼 하나의 차이
사무실 천장에 설치된 CCTV가 깜빡이는 순간, 나는 회사 냉장고에서 직원 간식을 서랍에 쓸어 담고 있었다. 늦은 밤, 초과근무 30시간째, 나는 더 이상 내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정신 상태가 아니었다. 내일 아침 일찍 제출해야 할 기획안을 위해 또 한 번 밤을 새워야 했고, 내 위장은 마치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듯 격렬하게 항의하고 있었다.
"박 과장, 아직도 일하고 있었어요?"
어둠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간식을 품에 안은 채 얼어붙었다. 대표님이었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그의 실루엣이 회의실 불빛에 드러났다. 귀신처럼 나타난 대표님의 얼굴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지쳐 보였다. 쥐포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둘 사이의 적막을 깼다.
"대...대표님. 이거 내일 다시 채워놓을 겁니다. 제가 지금 너무 배가 고파서..."
그는 잠시 침묵했다. 나는 해고를 각오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대표님은 냉장고로 다가와 문을 활짝 열었다. 형광등 불빛이 그의 피곤한 얼굴을 비추었다.
"알아요. 나도 지금 배고파서 죽겠어요. 하지만 직원 간식은 좀 그렇지 않을까요?"
대표님은 냉장고 옆 작은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우리가 평소에 보지 못했던 벽면이 부드럽게 열리며 작은 미니바가 나타났다. 샴페인부터 고급 초콜릿, 수입 치즈와 견과류까지. 내가 훔치려던 공장 과자와는 차원이 다른 간식들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었다.
"임원용이에요. 하지만 오늘 같은 날엔 함께 나눠먹는 게 좋겠죠."
대표님은 식탁에 간식을 펼쳐놓으며 내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서랍에 넣었던 과자들이 부끄러워 도로 꺼내 정리했다.
"사실 저도 처음엔 그랬어요. 과장님 나이 때 저도 냉장고에서 직원 간식을 몰래 가져갔거든요."
그는 와인을 따르며 웃었다. 그때 처음으로 대표님의 진짜 얼굴을 본 것 같았다. 늘 완벽해 보이던 그 사람 뒤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있었다.
"내일 아침까지 기획안 마무리하면 돼요. 내가 도와줄게요."
그날 밤 우리는 간식을 나눠 먹으며 기획안을 완성했다.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우리 회사의 '수평적 문화'라는 구호가 실은 벽 안에 숨겨진 미니바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구분선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언젠가 내가 그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지금은 간식을 훔치는 직원이지만, 언젠가는 간식을 나눠주는 대표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것도 단지 벽에 있는 버튼 하나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