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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친남친

남사친과 남친 사이, 흐릿한 경계

그가 내 손목을 잡았을 때, 세상의 모든 시계가 멈춘 것만 같았다. 5년간 '남사친'이라는 안전한 이름표를 달고 있던 민우의 손길에서 처음으로 다른 온도를 느꼈다.

"이제 솔직해지자, 지은아." 그의 목소리는 늘 듣던 것보다 낮고 깊었다. 도서관 구석에 앉아 있던 우리 사이로 늦봄의 햇살이 비스듬히 내리쬐었다. 민우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그의 표정을 읽기 어렵게 만들었지만, 손끝의 떨림은 속일 수 없었다.

우리는 고등학교 때부터 함께였다. 시험 전날의 밤샘 공부, 대학 입시의 좌절과 기쁨, 그리고 서로의 연애 상담까지. 나는 그에게 남자 친구들의 심리를 물었고, 그는 내게 썸타는 여자에게 보낼 카톡을 검수받았다. 완벽한 '남사친'과 '여사친'의 관계였다.

"하루는 네가 데이트한다고 나가던 날, 처음으로 술을 마시면서 울었어." 그의 고백은 폭풍우처럼 갑작스러웠다. "내가 아닌 다른 남자에게 웃는 너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 같았거든."

창밖에서는 벚꽃이 흩날렸다. 작년 이맘때, 우리는 이 벚꽃 아래서 나의 이별 후유증을 달래던 중이었다. 민우는 내 어깨에 자신의 외투를 둘러주며 "괜찮아, 더 좋은 사람 만날 거야"라고 말했다. 그때 그의 미소가 왜 그렇게 씁쓸해 보였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그런데 왜 지금?" 내 목소리는 떨렸다. "지난 주 소개팅에서 만난 사람이랑 잘 된다고 했잖아."

민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거짓말이었어. 네가 반응하길 바랐던 거야. 조금이라도 질투하거나, 아니라고 말해주길 기다렸어. 하지만 넌 그저 축하한다고만 했지."

그 순간, 지난 5년간의 기억들이 다른 색채로 물들기 시작했다. 아플 때마다 새벽에 달려와 준 것, 생일마다 가장 먼저 축하해준 것, 취업 면접 전날 응원 메시지를 보내준 것. 그리고 내가 다른 남자와 만날 때마다 보였던 그의 쓸쓸한 미소.

"남사친에서 남친으로 넘어가는 순간, 우린 돌아갈 수 없어. 지은아, 이 선을 넘어도 괜찮을까?" 그의 손이 조심스럽게 내 뺨을 쓸었다.

익숙함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그 손길에 나는 오랫동안 숨겨왔던 감정을 마주했다. 친구로서의 안전함과 연인으로서의 설렘 사이, 우리는 이미 그 경계를 몇 번이고 넘나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인정하지 않았을 뿐.

창밖의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듯, 우리 사이의 단단하던 경계도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남사친과 남친 사이, 가장 위험하고도 아름다운 그 선 위에서 나는 마침내 손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