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유령 남친: 17번 교실의 비밀
벚꽃이 흩날리던 날, 17번 교실의 창가 자리에 앉은 소년을 처음 보았다. 누구도 그를 보지 못했지만, 나만은 그를 볼 수 있었다. 우리 학교에 전학 온 지 일주일 만에 나는 유령과 사랑에 빠졌다.
"민서야, 또 혼자 중얼거리니?" 친구 지은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준영이와 대화하는 모습은 다른 사람들 눈에는 혼잣말하는 광경으로 보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냥 생각할 게 많아서..."라고 얼버무렸다.
준영이는 3년 전 이 학교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난 학생이었다. 하지만 그의 영혼은 자신이 좋아했던 교실에 남아 창가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의 비밀 관계는 매일 방과 후, 텅 빈 17번 교실에서 이어졌다. 그는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나는 그에게 바깥 세상의 소식을 전했다.
"네가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창가에 앉은 준영이가 말했다. 봄볕에 투명하게 빛나는 그의 모습은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하지만 네가 나 때문에 다른 친구들과 멀어지는 것 같아 걱정돼."
학교에서 점점 '이상한 아이'로 낙인찍히는 나를 위해, 준영은 자신을 잊으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 첫사랑을 잊을 수 있을까? 살아있는 사람도 첫사랑을 평생 기억하는데, 하물며 유령이 된 첫사랑을.
그날 밤, 오래된 학교 앨범을 뒤적이다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3년 전 사고로 숨진 학생의 사진 밑에는 '김준영'이 아닌 '이준호'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학교 공식 홈페이지를 검색했지만, 김준영이라는 학생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음 날, 담임 선생님께 조심스레 물었다. "3년 전에 김준영이라는 학생이 있었나요?"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 없어. 하지만 이준호라는 학생이 있었지. 안타깝게도 교통사고로..."
방과 후, 텅 빈 17번 교실로 달려갔다. 창가에 앉아 있는 그에게 다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네 이름은 정말 준영이 맞아?"
그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내 진짜 이름은 이준호야. 하지만 내가 좋아했던 소녀의 이름이 김민영이었어. 그녀는 항상 나를 '준영이'라고 불렀지."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네가 이 자리에 앉았을 때, 너를 민영이라고 착각했어. 너무 비슷해서..."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첫사랑의 대체품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빈자리를 채우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석양빛에 그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져 갔다. "이제 민영이를 만나러 갈 수 있을 것 같아. 고마워, 네 덕분이야." 그의 마지막 미소와 함께, 17번 교실의 창가는 비어버렸다. 학교 건물을 빠져나오며 뒤돌아보니, 세 번째 창문에서 두 개의 실루엣이 손을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