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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친게임

남친의 게임: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서

마지막 메시지에는 "오늘 밤 10시, 접속하지 마"라고만 적혀 있었다. 민준이 게임에 빠져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접속을 말리는 건 처음이었다. 남자친구의 괴상한 요청에 궁금증이 치솟았다.

우리의 관계는 이 게임으로 시작됐다. '새벽의 기사들'이라는 대규모 다중접속 온라인 게임에서 나는 힐러였고, 그는 내 목숨을 구해준 탱커였다. 가상세계에서 시작된 인연이 현실로 이어져 1년째 만남을 이어오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9시 55분. 평소라면 이미 접속해 민준과 함께 던전을 돌았을 시간이다. 손가락이 키보드를 맴돌았다. '그냥 접속해볼까?' 하는 유혹이 강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접속하지 말라는 부탁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10시 정각,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게임을 실행했다. 로그인 화면에서 손가락이 멈칫했지만, 이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게임 속 세계가 펼쳐졌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풍경, 그런데 메인 광장이 유난히 북적였다.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익숙한 목소리가 게임 채팅창을 채웠다. 민준의 캐릭터 '나이트메어'가 광장 중앙에 서 있었다. 그의 캐릭터 주변으로 수십 명의 플레이어들이 모여들었다.

"이 서버의 모든 분들 앞에서 선언합니다. 제 인생의 힐러이자 현실의 여자친구인 '세라핌'에게..."

심장이 쿵쾅거렸다. '세라핌'은 내 게임 닉네임이었다. 채팅창에서는 "오, 세라핌 어딨어?", "실시간 프러포즈인가?" 같은 메시지들이 물결처럼 흘러내렸다.

그때 화면이 변했다. 게임 속 하늘에 커다란 폭죽이 터지며 하트 모양을 그렸다. 그리고 이어서 하늘에 글자가 새겨졌다.

"세라핌, 결혼해줄래?"

손으로 입을 막았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채팅창은 축하 메시지로 넘쳐났다. 민준은 왜 접속하지 말라고 했을까?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면서 내가 미리 알아차리길 바라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거절당할까 봐 두려웠던 걸까?

떨리는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YES" 단 세 글자를 입력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채팅창에 내 대답이 올라오자 서버 전체가 축하 메시지로 뒤덮였다.

다음 날, 민준은 실제 반지를 들고 나타났다. "게임에서만 프러포즈하면 너무 디지털 같잖아,"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날 밤, 우리는 함께 게임에 접속했다. 이제 우리의 캐릭터들은 게임 내 결혼 시스템으로 묶여있었다. 현실과 가상, 두 세계에서 우리의 새로운 게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