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의 마지막 노래
그는 내 남친이 아니었다. 단지 내가 그렇게 믿고 싶었을 뿐이다. 그의 목소리가 처음 귓가에 스며들었을 때, 나는 이미 그의 노래에 중독되어 있었다.
지하철역 계단 앞에서 기타 케이스를 열어둔 채 노래하던 그를 처음 봤을 때, 주변의 소음이 모두 사라지는 듯했다. 그의 목소리는 허스키하면서도 따뜻했고, 손끝에서 태어나는 기타 선율은 서울의 차가운 겨울바람마저 녹여버릴 것 같았다. 지나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의 노래를 듣고 있는 내게, 그는 문득 시선을 던졌다. 그 짧은 눈맞춤에서 나는 운명을 느꼈다. 아니, 느끼고 싶었다.
"매일 이 시간에 여기서 노래해요?" 용기를 내어 물었을 때, 그는 미소로 답했다.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아니, 내가 혼자 써내려간 소설이 시작되었다.
매일 저녁 퇴근 시간, 나는 그의 노래를 듣기 위해 일부러 그 역으로 우회했다. 간혹 그가 없는 날이면 하루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점점 우리는 가까워졌다. 커피를 건네고, 메시지를 주고받고, 가끔은 그의 작은 공연장에 찾아가기도 했다. 그는 내게 '특별한 관객'이라고 불렀고, 나는 그 단어에 끊임없이 다른 의미를 덧입혔다.
내 친구들에게 그를 '남친'이라고 소개했을 때,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소셜미디어에 올린 우리의 사진들은 충분히 연인 같아 보였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손을 잡은 적은 단 한 번, 그것도 군중 속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봄이 오고, 그가 큰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 마음은 복잡했다. 기쁨과 불안이 뒤섞였다. "다음 주에 떠나. 기회가 왔어." 그의 메시지에 나는 축하한다는 말만 보냈다. 그리고 그날 밤, 그의 마지막 지하철역 공연에 찾아갔다.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소문이 퍼진 것 같았다.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노래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설렘과 기대가 배어 있었다. 마지막 곡을 부르기 전, 그는 관객들에게 말했다.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항상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 특히..." 그때 나는 그가 내 이름을 부를 거라 기대했다.
"특히 내 음악을 믿고 이 기회를 준 내 여자친구에게 감사해요."
나는 얼어붙었다. 군중 속에서 손을 흔드는 한 여자를 향해 그가 미소 짓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내가 만들어낸 '남친'은 시작부터 끝까지 내 상상 속에만 존재했다는 것을.
지금도 가끔 그의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나는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는다. 누군가의 남친이 된 그의 목소리가, 한때 나만의 것이었던 그 노래가, 이제는 모두의 것이 되어 바람을 타고 흩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