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의 이중생활: 알고 보니 대표님
대표님을 처음 만난 날, 그의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이상하게 익숙했다. 단단하게 굳은 손바닥과 오른쪽 검지에 있는 작은 흉터까지, 마치 내 남자친구 민준의 손과 똑같았다.
"김하은 씨, 우리 회사에서 일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공식적이었지만, 귓가에 맴도는 울림은 어젯밤 전화로 "보고싶어"라고 속삭이던 민준의 목소리와 겹쳐졌다. 사무실 형광등 아래 그의 날카로운 턱선이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면접장에서 첫 출근까지 단 하루, 그의 눈빛은 내가 알던 사람과는 너무 달랐다.
점심시간, 구내식당에서 메뉴를 고르는 대표님의 뒷모습이 민준과 겹쳐 보였다. 동일한 어깨 너비, 같은 높이의 키, 그리고 왼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걸음걸이까지. 복도에서 우연히 스쳐 지나갈 때마다 그의 향수 냄새는 민준의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스피어민트에 카다멈이 살짝 가미된, 다른 어디에서도 맡아본 적 없는 특별한 향기.
"하은씨, 이 보고서 다시 검토해주세요." 커피 잔을 들어 올리는 그의 손가락에서 민준이 항상 끼고 다니던 반지의 흔적인 듯한 희미한 자국이 보였다. 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날 밤, 민준과의 만남은 평소보다 짧았다. "회사일로 바빠서..." 그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잠든 그의 핸드폰에 뜬 알림을 본 순간,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내일 임원회의 9시 - 준비자료 확인필요'
다음날 아침, 나는 평소보다 일찍 회사에 도착했다. 아직 아무도 오지 않은 대표실 앞, 손잡이를 돌리자 문은 쉽게 열렸다. 책상 위 사진 한 장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얼굴을 지운 가족사진. 서랍을 열자 그곳에는 민준의 것과 똑같은 지갑이 있었다. 서류 한 장을 꺼내 보니 '이민준'이라는 이름 아래 '대표이사'라는 직함이 선명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가 서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민준인 동시에 대표님인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가면이 없었다.
"설명할 수 있어," 그가 말했다.
"사람이 아닌 직함으로 날 사랑하게 될까 봐 두려웠어..."
그의 눈에서 처음으로 진실을 보았다. 책상 위 달력에는 우리가 처음 만난 날에 작은 별표가 그려져 있었다. 3년 전 그날, 우리의 첫 데이트 때 그는 자신을 '그냥 회사원'이라고 소개했었다. 이제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이중생활의 이유가 사랑이었다는 것을. 내 손에 쥐어진 것은 비밀이 아닌,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