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의 아내
유리문 너머로 그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내 심장은 항상 그를 볼 때마다 그랬듯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5년 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기다렸어?" 민준이 웃으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내 귓가에 달콤한 속삭임처럼 스며들었다.
"아니, 방금 왔어." 거짓말이었다. 난 항상 그를 기다렸다. 20분, 1시간, 때로는 하루 종일. 그가 올 수 있을 때면 언제든.
카페의 오후 햇살이 그의 왼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비추었다. 빛나는 금속이 내 눈을 찔렀다. 민준은 내 남친이었지만, 다른 여자의 남편이기도 했다.
"오늘은 얼마나 시간 있어?" 내가 물었다.
"두 시간." 그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대답했다. "그녀가 친정에 갔어. 저녁까지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그녀. 이름 없는 존재. 내가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늘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여자. 민준의 아내. 합법적으로 그의 삶을 공유하는 여자.
"어제 네 생일이었지?" 민준이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미안해, 어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었어."
상자 안에는 작은 진주 귀걸이가 있었다. 아름다웠지만, 그의 아내가 받는 선물보다는 분명 저렴할 것이다. 그녀는 웨딩 링, 약혼 반지, 결혼 기념일 선물을 받는다. 나는 남은 것들을 받는다.
"고마워," 내가 미소 지었다. "정말 예뻐."
그날 오후, 우리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사랑을 나눴다. 호텔 방의 시트는 차가웠지만 우리의 몸은 뜨거웠다. 그의 손길이 내 피부를 타고 내려갈 때, 나는 잠시 그가 완전히 내 것이라고 느꼈다.
"사랑해," 그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그 말은 진실일까? 아니면 습관일까? 궁금했지만 물을 용기는 없었다.
민준이 떠난 후, 나는 침대에 홀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내 핸드폰이 울렸다. 민준의 아내였다. 아니, 내 친구 수아였다. 대학 시절부터의 절친한 친구. 민준을 내게 소개해준 바로 그 친구.
"지영아,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 민준이 출장 갔는데, 너무 심심해."
내 손가락이 떨렸다. 방금 전까지 민준의 체온이 남아있는 내 몸, 그리고 전화기 너머 수아의 순수한 목소리 사이에서 나는 숨을 쉴 수 없었다.
"미안해, 오늘은 약속이 있어." 또 다른 거짓말이었다.
통화를 끊고 나서, 나는 민준이 선물한 귀걸이를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알아챘다. 이 귀걸이는 지난 크리스마스에 수아가 자랑했던 것과 똑같은 디자인이었다. 민준은 자신의 아내와 남친에게 같은 선물을 주었다. 이제 나는 알게 되었다. 결국 나는 그의 '남친'이 아니라, 또 다른 '아내'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