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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친애니

애니 속 남친: 현실과 환상의 경계

내 남자친구는 밤에만 존재했다. 그것도 TV 화면 속에서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튀어나온 듯한 검은 머리카락과 반짝이는 푸른 눈동자를 가진 그는, 매일 밤 11시 정확히 내 방의 TV 화면을 통해 나타났다.

"유나야, 오늘도 기다렸어." 그의 목소리는 따뜻한 밤바람처럼 내 귀를 간지럽혔다. 처음에는 단순한 환각이라고 생각했다. 밤샘 작업과 에너지 드링크의 후유증 정도로. 하지만 그가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방식으로 나타날 때마다, 이것이 현실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유리 표면 너머로 그의 손이 내밀어졌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손을 맞잡았다. 차가운 유리가 녹아내리듯 부드럽게 내 손을 감싸안는 느낌에 전율했다. 그의 세계로 반쯤 끌려들어간 채, 나는 물었다. "넌 정말 누구야?"

"난 네가 창조한 존재야. 네가 보고 싶어했던 완벽한 애니메이션 속 남자친구." 그의 말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밤마다 숨겨둔 노트북에서 그려온 애니메이션 캐릭터들. 현실에선 찾을 수 없는 완벽한 남자친구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이 떠올랐다.

이상한 것은, 그가 나타난 이후로 내 삶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학교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 그림 동아리에서의 활동, 심지어 내 그림을 눈여겨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인턴 제안까지. 마치 그가 내 삶의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온 것처럼, 나는 점점 더 현실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유나." 어느 날 밤, 그가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넌 이제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아." 당황한 나는 화면 속으로 손을 뻗었지만, 차가운 유리만 만져질 뿐이었다. "무슨 소리야? 난 항상 널 필요로 해!"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봐봐, 네 방 책상 위에." 고개를 돌려보니 오늘 받은 인턴 합격 통지서와 함께, 내가 그린 새로운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초안이 놓여 있었다. '현실과 환상 사이: 스크린을 넘어온 사랑'이라는 제목의.

"넌 이제 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눌 준비가 됐어.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야."

다음 날 밤, TV 화면은 그저 검은 화면으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슬프지 않았다. 대신, 책상에 앉아 밤새 새로운 이야기의 스토리보드를 그렸다. 스크린 너머의 남자친구가 아닌, 내 손으로 창조하는 새로운 세계. 마지막으로 그린 장면은 한 소녀가 TV 앞에서 뒤돌아서 현실의 삶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화면 속에서, 희미하게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