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남친: 그 뜨거웠던 환상
그날 밤 해변에서 만난 남자의 웃음소리가 여름 해풍에 실려 내 귓가를 맴돌았다. 모래사장에 그려진 발자국처럼, 그의 존재는 밀물이 오면 사라질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 속을 걷고 있다는 것을.
"여기 아이스크림." 우연히 같은 해변 펜션에 묵게 된 그는 땀에 젖은 이마를 손등으로 닦으며 내게 바닐라 콘을 건넸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순간, 그의 미소도 내 마음속에 녹아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7월은 시작되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 서핑을 배우고, 저녁에는 모닥불 앞에서 별을 세며 밤을 지새웠다. 그의 손가락이 내 젖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줄 때마다, 수평선 너머로 지는 해처럼 내 이성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는 완벽한 여름 남친이었다. 너무나 완벽해서 의심조차 들지 않았다.
"우리 방학 끝나도 계속 만날 수 있을까?" 모래사장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내 손을 꼭 잡았고, 나는 그 온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8월의 마지막 주, 그의 전화번호가 더 이상 연결되지 않았다. 펜션 주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분 여기 투숙한 적 없어요." 주인의 말에 내 등줄기로 차가운 물이 흘러내렸다. 내 사진 속에서도, 우리가 함께 했던 카페 CCTV에서도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정신과 의사는 내 차트를 보며 천천히 말했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외로움이 만든 일시적 환각입니다. 특히 여름철에 이런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지난 3년간 같은 증상으로 매년 여름마다 오셨네요."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핸드폰을 열었다. 갤러리에는 혼자 찍은 해변 사진들과 빈 모래사장 사진뿐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사진, 저녁 노을이 지는 바다 배경에 희미하게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였다. 확대해 보니 모래사장에 적힌 메시지가 있었다.
"내년 여름에 다시 만나자."
창밖으로 쏟아지는 한여름의 소나기 속에서, 나는 그가 실존했는지 아닌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는 내가 만든 완벽한 남친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뜨거웠던 환상이 내게 남긴 행복은, 가장 현실적인 것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