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의 자기계발: 우리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
현우의 책장이 변하기 시작한 건 우리가 사귄 지 정확히 100일이 되던 날이었다. 내가 손수 만든 초콜릿 케이크를 들고 그의 원룸을 방문했을 때, 평소 만화책과 게임 공략집으로 가득했던 책장에 '자기계발'이라는 두 글자가 꽂혀있었다. 그것도 한 두 권이 아닌,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이게 다 뭐야?" 내가 물었을 때 현우는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해둔 대답처럼 술술 말을 이어갔다.
"나 좀 달라지려고. 너같이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한테 어울리는 남자친구가 되고 싶어서."
그날 밤, 현우는 케이크를 먹으며 자신의 '자기계발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했다. 아침 5시 기상, 영어 회화 앱 30분, 명상 15분, 독서 1시간, 운동 40분. 하루가 어떻게 24시간밖에 없냐는 농담을 던졌지만, 그의 눈빛은 진지했다. 내가 아는 그 장난기 많고 여유로운 현우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달이 바뀌고, 현우의 변화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주말 데이트는 '성장 콘텐츠' 강연으로 채워졌고, 영화관 대신 북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가 손에 쥐는 책들의 제목은 점점 더 거창해졌다. '최상위 1%의 시간 관리법', '백만장자의 아침 습관', '인생을 바꾸는 목표 설정의 기술'.
처음엔 귀여웠다. 나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우리의 대화는 점점 더 그의 '성장'으로만 채워졌다. 저녁을 먹다가도 그는 갑자기 오늘 읽은 자기계발서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사랑도 투자야. 지금 고생해서 나중에 더 큰 행복을 얻는 거야."
어느 날, 현우의 원룸을 방문했을 때 발견한 다이어리. 열지 말아야 했는데, 표지에 적힌 '100일 자기계발 프로젝트'라는 글씨가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첫 페이지에는 내 이름과 함께 쓰여 있었다.
'민지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자기계발 계획: 1단계 - 지적 수준 높이기, 2단계 - 경제적 능력 향상, 3단계 - 외모 개선...'
마지막 페이지에는 '최종 목표: 민지가 떠나지 않을 남자가 되기'라고 적혀 있었다. 그 아래로 작은 글씨로 덧붙여진 문장이 내 심장을 찔렀다. '사랑은 노력하는 자의 것이다. 자격을 갖춘 자만이 지킬 수 있다.'
다이어리를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우리 사이에 언제부터인가 쌓이기 시작한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졌다. 그가 읽은 무수한 자기계발서 어디에도,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사랑하는 법은 없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그를 변하게 만든 것이 정말 나였을까 하는 죄책감과 함께, 그의 자기계발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과연 내가 사랑했던 그 현우는 남아있을지 의문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