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의 비밀, 호텔의 증언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에 나는 부리나케 호텔 욕실 타일 뒤에 몸을 숨겼다. 남친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들어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지난 6개월 동안 의심할 만한 전조가 있었던가? 생각해보니 있었다. 밤늦은 문자, 주말의 갑작스러운 출장, 그리고 가끔씩 풍기던 익숙지 않은 향수 냄새. 호텔 욕실의 차가운 타일이 내 맨발을 얼어붙게 했지만, 내 심장은 분노로 불타올랐다.
"여기 어때? 맘에 들어?" 낯익은 그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욕실 문틈으로 그들의 그림자가 침대 위로 길게 드리워졌다. 담요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잔이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작은 키스 소리까지 모두 내 귀에 생생하게 들려왔다.
이 호텔은 우리의 첫 데이트 장소였다. 로비의 크리스탈 샹들리에 아래에서 그는 꽃다발을 건네며 내게 첫 키스를 했었다. 그때 그의 눈에서 읽었던 약속들이 지금 이 순간 욕실 타일 사이로 하수구에 버려진 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가 계속되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너무 위험하지 않아? 네 여자친구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걱정 마, 그녀는 절대 모를 거야. 늘 그랬듯이." 그의 확신에 찬 대답에 내 심장이 무너져 내렸다.
갑자기 욕실 문이 열렸다. 여자가 들어오려는 순간, 나는 순간의 결정을 내렸다. 타일 뒤에서 나와 당당하게 서기로 했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비명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가 급히 욕실로 달려왔을 때, 우리 셋은 어색한 삼각형을 그렸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여자는 나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렸다. "당신이... 유진씨죠? 정말 미안해요. 나... 나는 그가 싱글이라고 했어요." 그녀의 표정에서 진심어린 후회가 읽혔다. 그때 남친의 얼굴에서 당혹감이 아닌 계산된 침착함을 발견했다. 이건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네가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그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아닌 짜증이 묻어 있었다. 갑자기 내가 방해꾼이 된 기분이 들었다. 호텔방의 화려한 인테리어와 그의 냉담한 눈빛 사이에 놓인 아이러니가 나를 강타했다.
침묵 속에서 나는 내 핸드백을 집어 들었다. 그 안에는 우리의 6개월 기념으로 준비한 선물이 있었다. 하지만 대신 내 손은 룸키를 꺼냈다. "프론트에서 너의 예약을 확인했어. 우리의 특별한 곳이라고 했잖아." 뱉어낸 말에 호텔방 전체가 얼어붙는 듯했다.
나는 문 쪽으로 향했다. 그때 깨달았다. 호텔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예약 기록, 청구서, 심지어 문 앞의 '방해 말것' 팻말까지. 호텔은 그의 비밀을 모두 알고 있었고, 이제 나도 알게 되었다. 문을 닫으며 뒤돌아보니, 그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진실된 감정—두려움—을 읽을 수 있었다. 호텔의 복도를 걸으며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그가 두려워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