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의 회사: 진실의 가면
내 남친의 회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가 말해온 방식으로는.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그의 지갑에서 우연히 발견한 사원증 때문이었다. 지갑을 열자마자 낯선 회사 로고와 그의 얼굴, 그리고 전혀 다른 직함이 눈에 들어왔다. 5년 동안 그가 말했던 '글로벌 마케팅 디렉터'가 아닌 '보안 요원'이라는 글자가 차갑게 빛났다.
진우는 늘 야근이 많다고 했다. 해외 출장도 잦았고, 전화를 못 받는 시간대도 많았다. 나는 그런 그를 위해 따뜻한 저녁을 준비하고, 피곤에 지친 그의 어깨를 마사지해주며 사랑을 표현했다. 그의 성공을 자랑스러워했고, 바쁜 그를 이해해주려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 내 손에 들린 이 작은 플라스틱 카드 한 장이 5년간의 진실을 무너뜨렸다.
"뭐하는 거야?" 샤워를 마친 진우가 침실 문간에 서 있었다. 물방울이 그의 맨가슴을 타고 흘러내렸다. 평소라면 매력적으로 느껴졌을 모습이 이제는 낯설게 느껴졌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눈빛은 달랐다. 내가 본 적 없는 차가운 경계심이 그곳에 있었다.
"이게 뭐야?" 내 손에 든 사원증을 들어 보였다.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 진우의 얼굴에서 혈색이 빠져나갔다.
"설명할 수 있어." 그가 천천히 다가왔다. 익숙했던 그의 발걸음이 이제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전에 내 지갑을 뒤진 이유부터 설명해줄래?"
"셔츠에서 빨래표시를 확인하려고 했어. 네 지갑이 침대에 있길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넌 내게 5년 동안 거짓말을 한 거야?"
진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일하는 회사는 정부 보안 기관이야. 비밀유지가 필수인 일이지. 너에게조차 말할 수 없었어."
"그럼 출장은? 야근은? 모두 임무였던 거야?" 내 목소리가 떨렸다.
"대부분은." 그가 인정했다. "하지만 너에 대한 내 감정은 진짜야. 그것만은 절대 거짓이 아니야."
침묵이 우리 사이를 가득 채웠다. 내가 알고 있던 진우는 누구였을까? 그와 함께한 시간들, 나눈 비밀들, 공유한 꿈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그를 바라보니 익숙한 얼굴 아래 완전히 다른 사람이 서 있는 것 같았다.
"네 진짜 이름은 뭐야?" 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진우야. 그건 진짜야."
작은 진실이 큰 거짓 속에서 빛났다. 우리의 관계는 이제부터 다시 시작될까, 아니면 영원히 끝날까? 아이러니하게도 답을 알기 위해선, 거짓말쟁이를 다시 한번 믿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