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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대표님

남편의 비밀: 대표님으로 살아온 이중생활

남편의 와이셔츠 주머니에서 여자의 립스틱 자국이 찍힌 명함을 발견한 건 화요일 아침이었다. 빨래를 하려던 내 손가락 끝에 묻어난 선명한 진홍색은 우리의 15년 결혼 생활에 첫 번째 균열을 만들었다. 명함에는 '주식회사 미래비전 대표이사 김민준'이라고 적혀 있었다. 내 남편 이름이 아니었다.

"여보, 이거 뭐야?" 저녁 식탁에서 명함을 내밀자 남편 도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소리가 갑자기 너무 크게 들렸다. 도윤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천천히 명함을 가져갔다.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설명할 수 있어."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 "사실은... 내가 김민준이야."

도윤은 10년 전 부도 위기에 처한 가족 회사를 살리기 위해 새 신분을 만들었다고 했다. 낮에는 성공적인 벤처 기업 대표 김민준으로, 밤에는 평범한 회사원 강도윤으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립스틱 자국은 단순히 비서가 실수로 남긴 것이라고 했다.

다음 날 나는 미래비전 본사를 찾아갔다. 반짝이는 유리 빌딩 앞에 서자 가슴이 조여들었다. 15층 로비에서 안내 데스크를 향해 걸어갔을 때, 저 멀리 회의실에서 나오는 남편—아니, 김민준 대표를 보았다. 그는 자신감 넘치는 걸음걸이와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로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김민준 대표님께 면담을 요청하고 싶습니다." 안내 데스크에서 말했다.

"약속이 있으신가요?" 비서가 물었다.

"없습니다. 하지만 부인이라고 전해주세요."

비서의 눈이 커졌다. "죄송합니다만, 대표님은 미혼이십니다."

멍해진 상태로 집에 돌아와 남편의 서랍장을 뒤졌다. 가장 아래 서랍에서 발견한 검은색 상자에는 또 다른 신분증, 여권, 그리고 한 여자와 찍은 사진이 들어있었다. 사진 뒷면에는 '사랑하는 내 아내 민지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그날 밤, 도윤이 들어오자마자 나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의 얼굴에서 모든 혈색이 사라졌다.

"이게 다 뭐야? 대체 넌 누구야?"

도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는... 내가 누군지 더 이상 모르겠어. 너무 오랫동안 여러 사람으로 살아와서..."

그날 밤 도윤은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그는 원래 사기꾼이었다. 김민준이라는 신분으로 벤처 회사를 차려 투자금을 모았고, 강도윤으로서 평범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또 다른 신분으로 다른 여자와 결혼까지 했다는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도윤은 사라졌다. 남은 것은 식탁 위의 짧은 편지뿐이었다. "미안해. 내 진짜 이름은 이성주야. 난 계속해서 도망칠 수밖에 없어." 텔레비전에서는 김민준 대표가 수천억 투자금을 들고 잠적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창밖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서야 15년 동안 함께 살았던 남편의 진짜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