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과 남사친: 멀고도 가까운 거리
"대표님, 오늘 저녁에 시간 되세요?" 메시지를 보내는 내 손가락이 떨렸다. 그는 내 대표님이면서, 한때 내 절친한 남사친이었다.
10년 전, 우리는 동네 헬스장에서 만난 운동 파트너였다. 주현은 나보다 두 살 많았지만, 나이 차이가 무색할 만큼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단백질 쉐이크를 나눠 마시며 꿈을 공유하던 시절, 그는 "언젠가 내 회사를 차리면 꼭 너를 데려가겠다"고 농담처럼 말했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대표님'이 되었다. 스타트업 투자 유치 소식이 신문 경제면을 장식했고, 주현의 연락을 받은 건 그로부터 일주일 후였다. "약속 지키러 왔어. 우리 회사에서 일할래?" 그의 제안에 나는 망설임 없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에서 주현은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헬스장에서 배틀로프를 외치던 친구는 사라지고, 차가운 목소리로 실적을 물어보는 대표님만 남았다. 복도에서 마주쳐도 우리는 서류 이야기만 나눴고, 한때 밤새 나눴던 고민 상담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은 야근해야 할 것 같아요." 답장이 왔다. 나는 화면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제는 그의 메시지에서 기계적인 사무적 톤이 느껴진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았다.
그날 밤, 서류를 정리하는데 회의실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문을 살짝 열자 주현이 혼자 노트북을 보며 앉아있었다. 그의 얼굴은 지쳐 보였고, 헬스장에서 함께 운동할 때처럼 다크서클이 짙었다.
"물 한잔 줄까?" 내가 말했다. 그는 고개를 들었고, 잠시 우리 눈이 마주쳤다. 회사에서 처음으로 우리는 '대표님'과 '팀장'이 아닌, 그냥 주현이와 민석이로 마주 보고 있었다.
"야, 너 요즘 운동은 하냐?" 그가 물었다. 오랜만에 들은 반말이었다. 나는 의자에 앉으며 웃었다. "당신 날 데려간 후부터 야근이 운동이 됐는데요, 대표님."
그는 쓰게 웃었다. "미안해. 회사가 커지면서... 거리가 생겼네."
"괜찮아요. 이해해요." 내가 말했지만, 우리 둘 다 그건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가 노트북을 덮으며 말했다. "사실... 오늘 저녁 시간 된다. 옛날처럼 치킨 먹을래?"
회사 앞 포장마차에서 우리는 소주잔을 부딪쳤다. 그는 여전히 대표님이었고, 나는 그의 직원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만큼은 우리는 다시 한번 그저 오래된 남사친이었다. 어쩌면 대표님과 남사친 사이의 경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얇은 선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