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의 대학교: 인생 강의실
대표님이 된 첫날, 내 책상 위에는 15년 전 대학교에서 찍은 졸업사진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들여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경영학과 수석 졸업생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사진 속 나는 왼쪽 볼에 잉크가 묻은 채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그날 밤 팀 프로젝트 발표를 위해 밤새 준비하다 잠들었고, 급하게 일어나 찍은 사진이었다. 손가락으로 사진을 쓸어내리자 옅은 먼지가 일었다.
"대표님, 첫 이사회 미팅 10분 전입니다."
비서의 목소리에 나는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회의실로 향하는 복도는 마치 대학교 4학년 취업 면접장으로 향하던 그 긴장감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이 내 발걸음 소리를 증폭시켰고, 유리벽에 비친 내 모습은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
회의실에 들어서자 12명의 이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평균 연령 58세. 모두 내 부모님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들의 눈빛에서 의심과 호기심이 교차했다. '저 젊은 것이 무엇을 안다고?' 그런 질문이 공기 중에 맴돌았다.
"안녕하십니까, 신임 대표 김준호입니다."
내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느꼈다. 문득 대학교 3학년 때 발표 수업이 생각났다. 300명이 지켜보는 강당에서 다리가 후들거렸던 그때처럼. 발표 직전 교수님이 던진 질문이 귓가에 맴돌았다. "준호 군,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그때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 회의실의 불이 꺼지고 프로젝터가 멈췄다. 순간적인 혼란 속에서 누군가 한숨을 내쉬었다. "첫날부터 이러니..."
어둠 속에서 나는 가방에서 작은 손전등을 꺼냈다. 대학 시절부터 비상용으로 항상 가지고 다녔던 습관이었다. 손전등 불빛이 회의실을 은은하게 밝혔다.
"항상 준비되어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대학교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정전은 예상치 못했지만, 우리 회사가 직면한 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우리의 성패를 가를 겁니다."
손전등으로 내 앞에 놓인 종이를 비추며 나는 회사 구조조정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숫자와 도표 없이, 오직 내 머릿속에 정리된 내용만으로. 대학교 기숙사에서 밤새 외웠던 공식들과 이론들이 이제야 의미를 찾는 순간이었다.
불이 들어왔을 때, 회의실의 공기는 달라져 있었다. 의심의 눈초리 대신 관심의 시선들이 나를 향했다. 대학교에서 배운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이라는 거대한 시험 앞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준 인생의 강의실이었다.
"대표님,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궁금합니다."
이제 그들은 나를 '어린 신임 대표'가 아닌 '대표님'으로 부르고 있었다. 나는 대학교 졸업장을 받던 그 날의 자신감을 되찾았다. 15년이 지났지만, 인생이라는 대학교의 수업은 아직 진행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