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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소개팅

대표님의 소개팅: 이중생활의 미학

오늘 아침, 대표님 책상 위에 놓인 명함에는 없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김준호'. 회사에서는 모두가 그를 '대표님'이라 불렀지만, 오늘 저녁 그는 '준호'라는 이름으로 소개팅에 나간다. 진정한 자신을 알아볼 사람을 찾기 위한 작은 속임수였다.

그가 예약한 레스토랑의 창문에 빗방울이 맺힐 때, 준호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인조가죽 소파에 앉아 메뉴판을 넘기는 그의 손가락에서 평소의 날카로운 기운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왼쪽 손목시계는 일부러 집에 두고 왔다. 그 시계는 그가 대표라는 사실을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내는 물건이었다.

"김준호 씨인가요?" 누군가의 목소리에 그는 고개를 들었다. 앞에 선 여자는 예상과 달리 정장 차림이었다. 단정하게 묶은 머리, 최소한의 화장, 그리고 검은색 블라우스. 마치 자신의 회사에 면접을 보러 온 사람 같았다.

"네, 준호입니다. 앉으시죠, 이..." 그는 이름을 기억해내려 애썼다.

"이민서입니다. 광고대행사에서 일해요." 그녀는 간결하게 말했다. 그녀의 눈빛에서 예리함이 느껴졌다.

대화는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준호는 자신이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소개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도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니까. 그녀는 주로 들었고, 가끔씩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당신의 회사는 어떤 분위기인가요?" 그녀가 물었다.

"음... 수직적인 편이죠. 대표가 좀 엄격해서요." 준호는 자신의 농담에 혼자 미소지었다.

디저트가 나올 무렵, 그녀는 갑자기 물었다. "혹시 '엑스코어' 대표 아니신가요?"

준호의 손이 잠시 멈췄다. "어떻게..."

"저희 회사가 귀사의 광고를 맡고 있어요. 지난 주 프레젠테이션에서 봤습니다."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이런 방식으로 소개팅을 하시는 이유가 궁금했어요."

당황한 준호가 말을 찾지 못하는 사이, 그녀는 명함을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이민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는 처음으로 진짜 자신을 드러냈다. "사람들이 내 직책만 보는 것 같아서요. 진짜 나를 보는 사람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웃었다. "재미있네요. 저도 비슷한 이유로 직책을 숨기곤 해요."

두 사람의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레스토랑에 울렸다. 그날 밤, 대표님은 자신의 위치를 속이려 했지만, 오히려 진짜 자신을 발견한 사람을 만났다. 때로는 가면을 쓰려다 오히려 본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