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의 아내: 파란 봉투가 나타나기 전까지
그날 밤, 대표님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을 때, 나는 그의 아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검은 정장 차림의 비서가 현관문을 두드렸고, 내 손에 파란 봉투를 건넸다. "김 대표님의 유언장입니다." 그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15년간 완벽하게 연기해 온 역할처럼.
봉투 안에서 꺼낸 종이는 향수 냄새를 풍겼다. 그의 취향이었다. 거실 창문으로 스며드는 달빛이 종이 위에 차가운 빛을 드리웠다. 손가락 끝이 떨렸다. 서재에서 들려오는 시계 초침 소리가 내 귓가에서 폭탄처럼 울렸다.
"나의 사랑하는 아내에게..." 첫 문장부터 거짓이었다. 우리는 사랑한 적이 없었다. 계약결혼, 그것이 우리의 실체였다. 15년 전, 파산 직전의 내 카페에 찾아온 그는 명확한 제안을 했다. "내 아내가 되어 주시면, 당신의 모든 빚을 갚아드리겠습니다. 5년만 함께 있어주면 됩니다." 하지만 5년은 10년이 되었고, 결국 15년이 되었다.
유언장은 차갑고 사무적이었다. 재산 분배, 장례 절차, 회사 인수인계.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을 때, 내 심장이 멈췄다.
"당신이 왜 계속 남아있었는지 항상 궁금했소. 계약은 10년 전에 끝났는데도. 나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소. 하지만 당신은 떠나지 않았지. 그것이 내게는 사랑이었소."
차가운 창문에 이마를 기댔다. 바깥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건너편 아파트의 불빛들이 도시의 밤을 수놓았다. 그의 말이 맞았다. 왜 떠나지 않았을까? 처음엔 습관이었다. 그다음엔 안정감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것은... 다른 무언가가 되었다.
유언장 뒤에 붙어있던 봉투를, 이제야 발견했다. 그 안에는 카페의 열쇠와 증서가 있었다. 내 원래 카페가 있던 자리, 지금은 번화가의 중심이 된 그곳에 새 건물이 지어져 있었다. 그리고 증서에는 내 이름으로 된 소유권이 적혀 있었다.
메모에는 단 한 줄. "당신의 꿈을 다시 시작하세요. 이번에는 빚진 마음 없이."
창밖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이 내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과 겹쳐 보였다. 이제야 깨달았다. 15년 동안 대표님의 아내였던 나는, 실은 그의 마음을 지키는 사람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