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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애니

대표님의 비밀 애니: 흑백 세상에 색을 더하다

스물일곱 번째 거절 메일을 받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대표님의 사무실에 몰래 들어갔다. 야근 중에 화장실에 갔다 온 김 대표가 자리를 비운 그 짧은 틈을 타, 월간 수익 보고서를 찾기 위해서였다. 부서장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내게 절실했던 자료였다. 하지만 내가 발견한 건 수익 보고서가 아니었다.

그의 컴퓨터 화면은 한 애니메이션의 마지막 장면으로 멈춰 있었다. 울고 있는 소녀와 그녀를 위로하는 고양이 캐릭터. 서랍을 열었을 때는 더 놀라운 것들이 나왔다. 촘촘히 채워진 애니메이션 DVD들, 피규어들, 그리고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김 대표가 직접 그린 듯한 애니메이션 스케치북이었다.

"뭐하는 짓입니까, 최 과장?"

등 뒤에서 들려온 그의 차가운 목소리에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냉철한 판단력과 무표정으로 유명한, 우리 회사를 5년 만에 업계 1위로 올려놓은 김 대표가, 밤마다 애니메이션을 보고 캐릭터를 그린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대표님, 죄송합니다. 저는 그냥..."

변명할 틈도 없이 그는 스케치북을 내 손에서 빼앗아 책상 위에 놓았다. 기대했던 분노 대신, 그의 얼굴에는 이상하게 고요한 표정이 서려 있었다.

"내일 아침 일찍 오세요. 할 얘기가 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해고 통지를 예상하며 그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가 내민 것은 해고장이 아닌, 어제 봤던 그 스케치북이었다.

"이 회사를 시작하기 전, 나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일했습니다."

김 대표의 목소리는 처음으로 감정이 실려 있었다. 그가 넘기는 페이지마다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졌다. 그가 대학 시절 만든 단편 애니메이션이 국제 페스티벌에서 수상한 이야기, 꿈꾸던 애니메이션 감독의 길을 버리고 부모님의 빚을 갚기 위해 사업가가 된 이야기.

"회사가 안정되면 애니메이션 사업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죠."

그의 목소리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항상 '로봇 대표님'이라 부르던 그 사람 안에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비밀리에 키워온 열정이 있었다는 것을.

"최 과장은 마케팅에 탁월한 감각이 있더군요. 우리 회사의 첫 애니메이션 사업부를 맡아주지 않겠습니까?"

그날 이후, 우리는 함께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무실에는 점점 다채로운 색깔의 캐릭터들이 늘어갔고, 직원들의 표정에도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김 대표였다. 회의실에서 애니메이션 스토리보드를 설명할 때의 그 눈빛은, 수익 보고서를 검토할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때로는 우리의 가장 깊은 비밀이, 우리를 가장 빛나게 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오늘 우리 회사의 첫 애니메이션 시사회에서, 대표님의 눈가에 맺힌 그 작은 눈물방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