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의 마지막 여행
"죽음이 이렇게 푸른색일 줄은 몰랐다." 대표님은 창밖의 에메랄드빛 바다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대표님의 비서로 일한 5년 동안, 그의 얼굴에서 지금처럼 평온한 표정을 본 적은 없었다.
3개월 전, 병원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대표님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며 나에게만 비밀을 털어놓았다. "김 비서, 내 마지막 여행을 계획해줘. 그동안 미뤄둔 곳들을 모두 가보고 싶어." 늘 분 단위로 일정을 쪼개 살던 그였기에, 이 말은 마치 다른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바다 위 오두막 리조트. 창문을 열면 따뜻한 바닷바람이 방 안으로 밀려들었다. 대표님은 평생 그토록 혐오했던 슬리퍼를 신고,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회의실에서만 보던 그의 모습과는 판이했다.
"알아? 나는 30년 동안 단 하루도 일정표 없이 살아본 적이 없었어." 그가 탄산수를 홀짝이며 말했다. "평생 다음 분기, 다음 해의 성장을 계획하느라 정작 오늘의 바다가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어."
대표님과 함께한 한 달간의 여행은 그의 인생 지도를 완전히 다시 그리는 과정이었다. 그는 베트남의 시골 마을에서 처음으로 직접 음식을 요리했고, 히말라야 산자락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일출을 바라보았다. 사하라 사막의 모래 위에 누워 별을 세던 밤, 그는 "김 비서,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쳐왔는지 모르겠어"라고 속삭였다.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인 이 남태평양의 작은 섬에서, 대표님은 점점 더 말수가 줄어들었다. 대신 그의 노트에는 매일 밤 길어지는 문장들이 채워졌다. 어느 날 저녁, 그가 내게 봉투 하나를 건넸다.
"회사에 돌아가면 이걸 모두에게 나눠줘. 그리고... 미안하다고 전해줘. 내가 그들의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았다고."
봉투 안에는 직원 모두에게 보내는 편지와 함께 각자 두 달치 유급 휴가를 쓸 수 있는 증서가 들어있었다. 친필로 쓴 메모에는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가장 귀한 것은 시간임을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대표님은 다음 날 아침, 테라스 의자에 앉아 해가 뜨는 것을 바라보다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의 얼굴에는 평화로운 미소가 남아있었다. 내 손에는 그가 마지막으로 적은 노트가 있었다. "진정한 성공이란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충실히 여행했는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