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의 함정: 대표님의 비밀
유리 사무실 너머로 대표님의 모습이 보였다. 회색 정장 아래 붉은 넥타이를 매만지는 그의 손가락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왜 하필 오늘 그가 사내 데이트 앱에 나타났는지, 그리고 왜 하필 내게 매칭되었는지는 신의 장난일 것이다.
"김 주임, 오늘 저녁 시간 어때요?" 대표님의 메시지가 핸드폰 화면에 떴다. 심장이 귓가에서 쿵쿵거렸다. 회사 데이트 앱은 익명성을 보장한다지만, 프로필 사진 없이도 나는 그를 단번에 알아봤다. 하지만 그는 내가 누군지 모르는 듯했다.
은은한 재즈가 흐르는 레스토랑에서 우리의 데이트는 시작됐다. 그의 목소리는 회의실에서보다 부드러웠고, 와인잔에 반사된 촛불이 그의 눈동자에서 춤을 추었다. 사무실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미소가 그의 입가에 맴돌았다.
"사실 너무 외로웠어요." 세 번째 와인잔을 비우며 그가 말했다. "CEO라는 타이틀 뒤에 숨어 진짜 나를 보여줄 수 없다는 게..."
그의 손이 테이블 위에서 내 손을 찾았다. 차갑던 그의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낯설었다. 사무실에서 차갑게 지시를 내리던 목소리와 지금의 목소리는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솔직히 말할게요. 나, 당신이 누군지 알아요." 그의 고백에 와인 한 모금이 목에 걸렸다. "김 주임이죠. 아이디어 회의에서 항상 빛나는 의견을 내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럼 왜... 이런 만남을..."
"직급 때문에 다가갈 수 없었어요. 이 앱이 우연의 핑계를 줬죠."
디저트가 나왔을 때, 그는 조용히 말했다. "다음 주에 발표할 새 프로젝트, 당신의 기획안이 채택됐어요. 하지만 오해하지 마세요. 오늘의 데이트와는 무관해요."
순간 달콤했던 초콜릿 무스가 쓴맛으로 변했다. 내 실력 때문인지, 아니면 이 데이트 때문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화장실에 가는 척 자리를 뜨면서 그의 핸드폰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열려있는 사내 메신저에는 "오늘 데이트 성공적. 그녀의 입을 통해 경쟁사 정보 확인 중"이라는 메시지.
차가운 화장실 거울 앞에서 립스틱을 다시 바르며 생각했다. 내 손에 쥐어진 USB에는 대표님이 그토록 원하는 신제품 설계도가 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이것이었구나. 거울 속 내 미소가 더욱 차갑게 빛났다. 이제 누가 누구를 이용하는 게임인지 다시 생각해볼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