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로맨스, 첫 번째 남친
여든 일곱이 되던 해, 나는 평생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사귀게 됐다. 요양원에서 만난 박동석 씨는 내가 아침마다 들고 다니던 시집을 보고 말을 걸어왔다. "김소월도 좋지만,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 더 좋더군요." 그의 목소리에는 오래된 LP 판을 돌릴 때 나는 따스한 잡음 같은 것이 있었다.
우리의 데이트는 주로 휠체어를 나란히 두고 요양원 정원을 도는 것이었다. 때로는 손을 잡고, 때로는 그저 침묵 속에서 함께 숨을 쉬었다. 젊은 간호사들은 우리를 '요양원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불렀다. 그들의 눈에는 우리가 귀엽고 안쓰러운 존재였겠지만, 내 심장은 열여덟 때보다 더 격렬하게 뛰었다.
"80년 넘게 살면서 사랑을 못 해봤다니, 믿기지 않아요." 동석 씨가 내 주름진 손등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사랑은 많이 했어요. 다만... 남자친구는 없었을 뿐이죠."
나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과 전쟁, 그리고 급격한 산업화를 겪으며 자랐다. 결혼은 당연히 부모님이 정해주신 사람과 했고, 남편은 무뚝뚝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우리는 아이 셋을 키우며 반세기를 함께 했다.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 의무에 가까웠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지도 어느덧 십년이 넘었다.
동석 씨와 나는 서로의 약 시간을 외우고, 통증이 심한 날이면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노년의 사랑은 젊은 날의 열정과는 달랐다. 그것은 마치 저녁노을처럼 짧지만 모든 색채가 농축된 아름다움이었다.
"우리가 만약 스무 살에 만났다면 어땠을까요?" 어느 날 동석 씨가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당신은 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결혼했을 거예요.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을 사랑할 용기가 없었으니까."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 동석 씨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다. 의사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어느 오후, 그는 내 손을 꼭 쥐고 말했다. "이봐요, 최영자 씨. 우리... 남자친구, 여자친구 하는 거 말고 결혼할까요?" 간호사들이 준비한 작은 의자에 앉아, 우리는 반지 대신 서로의 산소호흡기 튜브를 교환했다.
동석 씨는 결혼식 이틀 후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그의 마지막 말은 "내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다. 나는 이제 미망인이면서 동시에 신부다. 여든 일곱에 처음으로 사귄 남자친구는 내 가슴에 작은 불꽃 하나를 남겼다. 그리고 어쩌면, 이 짧고 찬란했던 로맨스가 내 인생 전체보다 더 의미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휠체어를 밀며 정원을 돈다. 이제 곁에는 아무도 없지만, 나는 마지막까지 오른쪽에 약간의 공간을 남겨둔다. 첫 번째이자 마지막 남자친구를 위한 자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