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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대표님

로맨스 대표님: 수요일마다 찾아오는 비밀

대표님의 손가락이 내 손등을 스치는 순간, 사무실 전체가 멈춘 것 같았다. 거짓말처럼 다른 직원들은 보이지 않고, 그의 향수 냄새만이 내 감각을 채웠다.

"이 보고서, 혼자 작업한 거예요?"

정현우 대표님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낮고 단단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삼십 대 중반의 그는 회사를 인수한 지 1년 만에 매출을 두 배로 늘린 전설적인 경영자였다. 그리고 나, 마케팅팀의 신입사원 이서연은... 그를 몰래 사랑하는 평범한 직원이었다.

"오늘 저녁에 시간 있나요? 이 프로젝트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열흘 동안 밤을 새워 준비한 보고서가 마침내 그의 관심을 끌었다. 그것도 수요일에. 모두가 일찍 퇴근하는 그 날에.

회의실의 불빛이 그의 윤곽을 부드럽게 감쌌다. 창밖으로는 서울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프로젝트 이야기에서 개인적인 대화로 넘어갔다. 그의 유학 시절 이야기, 내가 이 회사에 지원한 이유,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과 영화까지.

"사실... 서연 씨 보고서를 보고 싶어서 이 자리를 마련한 건 아니에요."

그의 고백은 부드러웠지만 충격적이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몇 주 전부터 눈여겨봤어요. 당신의 열정, 그 에너지가 마음에 들었어요."

그날 밤, 우리는 첫 키스를 나눴다. 그리고 그 후로 매주 수요일, 우리는 '프로젝트 회의'라는 이름으로 만남을 이어갔다. 로맨스 소설에서나 볼 법한 일이 내게 일어나고 있었다.

두 달 후, 나는 그에게 완전히 빠져있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아무도 우리 관계를 알지 못했다. 그는 "적절한 때가 오면 공개하자"고 했다. 나는 기다렸다.

그리고 오늘, 또 다른 수요일. 정시에 퇴근한 동료들을 배웅하고 회의실로 향하는 길에 인사팀장님과 마주쳤다.

"서연 씨, 정 대표님 기다리나요? 오늘 외부 미팅 있으셔서 일찍 나가셨어요. 아, 그런데 축하해요! 프로젝트 리더로 승진했다면서요?"

나는 혼란스러웠다. 내가 승진했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가 외부 미팅이라니, 우리의 수요일 약속은?

사무실로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메일함에는 인사발령 공지가 있었다. 내 이름 옆에는 확실히 '프로젝트 리더'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다른 이름 하나 - '김민지, 마케팅 부서 발령'.

호기심에 검색창에 그녀의 이름을 입력했다. 사진 한 장이 화면을 채웠다. 나는 숨을, 말을, 생각을 멈췄다. 정현우 대표와 김민지가 함께 찍은 사진. 그 아래에는 "정현우 그룹 대표, 약혼자 김민지와 함께 자선행사 참석" 이란 기사 제목.

그리고 게시일자는... 정확히 3개월 전. 우리의 첫 만남보다 한참 이전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약속을 취소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축하해요, 리더님." 내 손가락이 화면 위를 떠돌았다. 답장을 쓸지, 전화를 걸지, 아니면 그냥 모든 것을 지워버릴지. 다음 수요일, 회의실은 누구의 로맨스를 품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