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의 한 수: 보드게임에 담긴 사랑
체스판 위에서 그의 킹이 내 퀸을 노려보는 순간, 나는 그의 눈빛이 게임 밖에서도 나를 쫓고 있음을 알아챘다. "체크메이트까지 세 수 남았어요, 김교수님." 내가 말했을 때, 그의 입가에 번진 미소는 패배를 인정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매주 화요일 저녁, 대학 보드게임 동아리 모임에서 나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유독 그와 대결하길 즐겼다. 문학사학과 김현우 교수. 그는 40대 초반의 나이가 무색하게 청바지에 면티를 입고 나타나곤 했다. 학생들 사이에선 '천재 교수'로 불렸지만, 보드게임 앞에선 그저 한 명의 열정적인 플레이어일 뿐이었다.
"이번엔 '러브레터'는 어떠세요?" 그가 제안했다. 이름부터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임이었다. 카드 한 장으로 상대의 패를 추리하는 간단한 게임. 그러나 그날 밤, 우리가 추리한 건 카드가 아닌 서로의 마음이었다.
게임이 끝나고 텅 빈 동아리실, 구석에 놓인 오래된 체스판 앞에서 그가 물었다. "매주 나와 대결하는 이유가 뭐죠, 서지민 씨?"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창문 너머로 캠퍼스의 가로등 불빛이 그의 얼굴 절반을 밝혔다.
"교수님이 지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요." 내가 농담처럼 답했지만, 그의 눈빛은 진지했다.
"학기가 끝나면 더 이상 여기 못 올 텐데." 그의 말에 내 심장이 묘한 박자를 놓쳤다. "런던 대학에서 1년간 객원교수로 초청받았거든요."
침묵이 우리 사이를 채웠다. 나는 문득 모든 보드게임의 본질을 깨달았다. 승리를 향한 여정에서 우리는 늘 다음 수를 계산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란 것을.
"그럼, 떠나기 전에 마지막 게임 한 판 더 할까요?" 내가 말했다. "이번엔 졌을 때 벌칙이 있는 게임으로요."
그의 눈썹이 호기심 어린 곡선을 그렸다. "어떤 벌칙인데요?"
"지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에게 진심을 하나 말해야 해요." 내 심장이 체스 퀸처럼 대담하게 움직였다.
우리는 '판타지아'라는 게임을 택했다. 전략과 운이 절묘하게 얽힌 게임. 마지막 주사위가 굴러갈 때, 나는 일부러 잘못된 수를 두었다. 그리고 의도적인 패배 후, 내 진심을 말했다. "교수님이 런던에 가면... 편지라도 써도 될까요?"
그때 그가 내밀었던 건 작은 종이 한 장. 그의 런던 주소가 적힌. "이미 한 수 앞서 생각했네요." 그가 웃었다.
지금도 우리는 매주 화요일마다 화상으로 보드게임을 한다.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때때로 현실은 가장 복잡한 보드게임보다 더 예측할 수 없는 법. 그리고 그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향한 다음 한 수를 조심스레 계산하며 사랑이란 게임을 이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