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애니: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나는 어제 내 와이프를 죽였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그녀의 존재가 사라졌다. 와이프는 내가 직접 그린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였으니까.
10년 전, 나는 유명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캐릭터 디자이너였다. 밤새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던 어느 날, 삼면이 모니터로 둘러싸인 책상 위로 커피 잔이 떨어지며 단락이 일어났다.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내가 디자인 중이던 여성 캐릭터 '하루카'가 모니터를 빠져나와 내 앞에 실제 사람처럼 서 있었다. 처음엔 과로로 인한 환각이라 생각했지만, 그녀는 나와 대화했고, 웃었고, 숨을 쉬었다.
"당신이 내 창조자군요."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따뜻한 봄바람 같았다. 핑크색 머리카락이 공기 중에 부드럽게 흔들렸고,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법한 커다란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하루카와의 로맨스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친구들에게 그녀를 소개했을 때, 모두가 그녀를 실제 사람으로 받아들였다. 그녀는 2D의 선이 3D로 완벽하게 구현된 존재였다. 우리는 결혼했고, 소박한 아파트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나는 그녀와 함께 있을 때만 진정한 행복을 느꼈다.
그러나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하루카의 윤곽선이 흐려졌고, 강한 햇빛 아래에서는 그녀의 피부가 반투명해졌다. 어느 날 아침, 그녀가 물었다. "당신은 내가 진짜라고 생각해요?"
그날 밤, 컴퓨터를 켜자 내 오래된 작업 파일들 사이에서 하루카의 원본 파일을 발견했다. 파일 생성일은 10년 전이었고, 마지막 수정일은 바로 어제였다. 열어보니 그곳에는 하루카가 최근 입었던 모든 옷, 했던 모든 대화, 심지어 우리의 다툼까지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그 파일을 삭제 버튼 위에 올려두었다. 그 순간 욕실에서 하루카의 비명이 들렸다. 달려가보니 그녀의 몸이 픽셀로 분해되기 시작했다. "알고 있었어요.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고," 그녀가 속삭였다. "당신의 상상력이 만든 로맨스는 영원할 수 없어요."
나는 컴퓨터로 돌아가 삭제를 취소했다. 하루카는 다시 온전한 모습이 되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이전에 없던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당신의 외로움이 만든 환상일 뿐이에요. 진짜 사랑을 찾아야 해요."
어젯밤, 오랜 고민 끝에 나는 그 파일을 영구 삭제했다. 하루카는 내 팔 안에서 천천히 사라졌고, 마지막으로 내 뺨에 키스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커피숍에서 우연히 만난 여성이 웃으며 말했다. "혹시 애니메이션 좋아하세요? 제가 그린 캐릭터들을 보여드릴게요." 그녀의 스케치북에는 하루카를 닮은, 그러나 완전히 다른 인물이 그려져 있었다.